[투데이포럼]송기은 삼성화재보험 RC

무릇 ‘농자천하지대본’이라 일렀거늘 오늘 우리 농촌의 현실은 어떠한가. 흙을 사랑하고 땅을 제 몸처럼 아끼며 일궈온 것을 천직으로 여기며 살아온 농민들에게 작금의 농촌정책은 그야말로 농민 말살정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1986년 9월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여러 나라와의 자유무역협정 체결로 농·수산물이 물밀듯 밀려들어오더니 급기야 식탁에 오르는 밥쌀용 쌀까지 수입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러다보니 농촌을 지킨다던 낭만섞인 이야기는 ‘농촌을 사수하라’는 특명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형국이다.

해마다 11월 11일은 국적 불명의 ‘빼빼로 데이’라 해서 시끌벅적거리는데 정작 이 날은 우리 고유의 ‘가래떡 날’이요, ‘농민의 날’이란 걸 알고있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은듯 하다. 넉넉하고 풍요로워야 할 가을걷이가 언제부터인가 깊은 한숨과 시름이 된지도 이미 오래다. 좁은 소견일지 모르지만 만에 하나 세계 3차대전이 벌어진다면 그건 분명 식량전쟁으로 비롯될 것이다.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먹을거리의 소중함을 깨우쳐 농민들이 자긍심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국가시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녹색당의 일원으로 지난 10월에는 경북 영덕에서 진행되는 ‘핵발전소 건립 관련 주민투표 홍보’에도 지역 활동가들과 함께 다녀왔다. 오늘의 농어촌은 서울을 포함한 대도시에 전기를 공급하는 핵발전소 부지로 전락하고 어마어마한 전압의 송전탑은 유구한 전설과 이야기가 살아숨쉬던 정겨운 고향 마을들을 송두리째 파헤치고 난도질하고 있다.

아리랑의 고장 밀양이나 소싸움의 전통을 이어가던 청도의 거대 송전탑은 농촌마을에서 여생을 더없이 평화롭게 보내야 할 많은 어르신들을 다 늙으막에 시민활동가 내지는 투사로 내몰았다. 지방자치는 쓰레기 매립장의 확보만의 문제가 결코 아니며 삶의 가장 기본이 되는 에너지 자립에서부터 시작돼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비정상적인 도시문명의 깊은 잠에서 벗어나 자연과의 교감을 나눌 줄 아는 참 주인로서의 균형잡힌 삶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전국 각처에서 올라오는 대절버스의 행렬로 고속도로는 장사진을 이뤘고, 중간 휴게소에서 준비한 도시락으로 점심을 떼우는 농민들의 모습은 마치 6·25 피란행렬을 연상케 했다.

아마 저들은 세계 10위 경제 강소국이니 국민소득 몇 만불이라 하는 정부의 공치사보다 정작 정직한 농민들이 마음 편히 잘 사는 나라를 한결같이 염원하고 있음을 본다. 차에 오른 지 5시간을 넘겨 비내리는 광화문에 들어서니 흥겨워야 할 농악대는 농민의 한과 시름을 실타래 풀어놓듯 구슬프기 그지없다. 영국에서는 이미 법으로 금지된 캡사이신 물대포를 조준 직사해 선량한 농민이 사경을 헤매는 이 나라는 누구의 나라란 말인가. L.톨스토이가 말한 ‘국가는 폭력이다’란 말이 이 땅에서 버젓이 행해지는 현실을 규탄한다.

필자를 더욱 안타깝게 하는 현실은 이러한 농민들의 비참한 현실이 대한민국 공중파 방송 어디에서도 제대로 보도조차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끝으로, 세월호 특별위원회의 진실 인양과 백남기 농부님의 쾌차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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