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포럼]김태호 부여군의회 의장

세계유산이 있는 부여 부소산에는 고란사가 있다. 이 고란사에는 고란약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소부리(부여 옛도읍 사비)에 노부부가 살고 있었다. 이 부부는 금실이 너무 좋은데 아쉽게도 자식이 없었다. 고민하던 이들에게 어떤 도사가 나타났다. 도사는 고란사의 음양 약수를 먹으라고 했다. 즉 고란사에서 음의 기운이 스며있는 고란초 잎에 맺힌 부드러운 이슬과 양의 기운이 스며있는 강한 물이 합쳐진 물을 마시라고 했다. 그러면 회춘해서 아이를 낳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할머니는 기뻐서 반신반의하는 할아버지에게 물을 마시라고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할아버지는 돌아오시지 않았다.이상하게 여긴 할머니는 걱정스런 마음에 할아버지를 찾으러 갔다.

그런데 할머니는 깜짝 놀랐다. 갓난아기가 고란사 약수터 옆에 울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이 할아버지를 묘하게 닮아 있었다. 그때서야 할머니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고란사 약수를 한번 마시면 3년이 젊어진다'는 도사의 말을 할아버지에게 전하지 않은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그걸 모르고 계속 마셔셔 어린 아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할머니는 자신의 욕심을 뉘우치고 이 아이를 잘 키웠고 훗날 그 아이는 백제의 큰 재목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고란사 약수 설화가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주는 말은 무엇일까.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오늘은 공유지의 비극과 그 해결법에 대해 고민해 보기로 하겠다. 공유지의 비극이란 모든 사람에게 속해 있는 어떤 재화가 어느 한 사람이 욕심을 부리면 다른 사람은 그 재화를 이용할 수 없는 경우를 말한다. 위 이야기에서 고란사의 약수는 공유지에 속한다. 즉 모두에게 속한 공동체 공동의 재산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비록 실수였지만 할아버지는 회춘의 욕망인 개인의 욕심을 쫒아 그 공공재(고란사 약수)를 과도하게 마셨다. 결국 할아버지는 아이가 되어 버렸고 원하는 자식을 얻지 못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고란사 약수 같은 공유지의 비극을 해결할 방법은 무엇일까. 할머니는 이내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고란사로 달려간다. 할머니가 발견한 것은 아기였다. 즉 어머니의 모성으로 돌봐줘야 할 아이였다. '승자의 뇌' 저자인 이안 로버트슨은 리더십에 있어서 남성의 방식과 여성의 방식이 다르다고 한다. 남성의 방식은 다소 개인 위주의 방식인데 반해 여성의 방식을 서로 합의하고 서로 공유하는 방식을 취한다고 한다. 남성이 옳다 여성이 옳다고 하지는 말자. 다만 공유지의 비극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여성적 방식으로 개인의 욕심을 조율하는 '합의'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공동체가 무너진 사회이다. 즉 공동체의 가치관이 무너지고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가치관이 범람하고 있는 시대다. 정치철학자 찰스 테일러가 말한 것처럼 인간의 상호 인정(Recognition) 속에서 살아간다. 비록 인간이 완벽하지 않고 실수가 많은 존재이지만 우리는 적어도 공감 속에 이해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장자(莊子)에 보면 '서로 물을 끼얹는 물고기' 이야기가 나온다. 물고기는 물에 사는 게 가장 행복하다. 이상적인 상황이다. 그러나 일단 물에 나오면 서로 물을 뿌려서 서로 살아야 한다. 우리 인간도 유토피아를 떠나 뭔가 결핍을 안고 살아간다. 정치는 이런 부족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예술이다. 서로 자신의 이기심에 따라 고란 약수 같은 공유지를 소비하는 게 아니라 서로 물을 먹여줄 수 있는 프레임을 만드는 예술이다. 고란사 약수 할머니의 여성적 지혜가 정치적으로 실현되길 소망한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