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전인준 음성여중 교사

아이들은 운동장에 눈이 하얗게 쌓이기를 기대하고 선생님들은 눈길에 출퇴근할 걱정을 하는 계절이 느닷없이 다가왔다. 달력에 굵은 글씨로 박힌 12라는 숫자가 낯설고 생경하게 여겨지는 것은 미처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하고 12월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날짜가 매일매일 급하게 '더하기 1'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새도 없이 가을을 달려왔다. 가을은 산과 들에만 열매 맺는 게 아니다. 학교의 가을도 결실의 계절이다. 일년 농사를 갈무리하느라 선생님도, 아이들도 마음이 울긋불긋하게 풍성해진다.

큰 행사인 학교 축제와 체육 대회가 있었고 진로체험학습과 다양한 초청 강연이 있었다. 일년간 운영한 각종프로그램들의 보고서 제출과 결과 발표는 부담스럽지만... 가을걷이를 위해 농부의 기계가 열심히 돌아갈 때 학교도 매일 들썩들썩 시끌벅적했다. 반별 합창 대회 연습으로 교정은 노래 소리로 가득했고 체육대회 우승을 향한 뜀박질 소리들이 귀를 울렸다. 친구사랑 삼겹살 파티 때는 고기 굽는 매혹적 냄새와 웃음소리로 학교가 떠나가는 듯 했고 무용, 연극, 발레 등 공연 관람과 초청음악회와 강연들을 보고, 듣고, 배우느라 아이들의 발걸음은 분주했다. 아이들의 노래 소리, 웃음소리, 분주한 발소리가 참 듣기 좋았다. 살아있는 생동감, 열정어린 모습이 내게도 에너지를 나눠 주었다.

학교가 행사로만 바쁘고 소란스러웠던 건 아니다. 자유학기제의 운영으로 수업 시간의 데시벨도 달라졌다. 이전의 교실은 대체로 선생님 혼자 목에 성대 결절이 생길 만큼 열심히 목소리를 내고 아이들은 행여 설명 내용을 놓칠까봐 약간의 긴장 상태로 필기를 했다. 질문과 대답이 가끔씩 이뤄졌으나 질문은 선생님의 몫이었다.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의 모습은 눈빛을 반짝이며 선생님과 눈을 맞추고 이해한다는 뜻을 담아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다양한 색깔의 펜과 형광펜을 자유롭게 섞어가며 내용 이해와 동시에 필기를 하는 아이들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자유학기제가 도입되면서 수업 장면이 달라졌다. 진로, 예술체육 활동과 함께 교과 수업을 주제 활동 중심으로 운영하도록 한 것이다. 덕분에 이론 설명과 암기의 부담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대신 직접 실습을 하게 되었다. 시간표가 블록 타임으로 구성되고 핵심성취기준 위주로 수업을 진행하니 교과 진도에 얽매이지 않아 활동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게다가 중간고사 기말고사의 부담이 없는 것은 그야말로 최적의 환경이었다. 실험 과정을 글이나 인터넷 동영상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직접 실험을 했다. 바느질을 하고 친구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었다. PPT 만드는 법을 익혀 직접 발표 자료를 만들었다. 모둠 대표만 발표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학생이 앞에 나와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모둠 신문을 만들었고 다양한 독서와 재미있는 독후 활동을 하며 책읽기의 즐거움을 알아갔다.

이렇게 각 교과별로 다양한 활동 위주의 모둠 수업이 이뤄지니 학교는 시끄러워졌다. 쉬는 시간뿐만 아니라 수업 시간에도 이 교실, 저 교실에 웃음소리, 아이들의 말소리가 가득했다. 연관성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의 표정도 1학기 때보다 온화했고 짜증스런 혼잣말도 들리지 않았다. 자유학기제를 운영하며 무엇보다 반가웠던 건 수업 시간에 배운 것들을 실생활에 직접 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식이 많아도 할 줄은 모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활동 중심의 수업은 할 줄 알게 하는 수업이었다.

수업의 변화와 여러 행사로 술렁술렁 시끄러운 아이들을 보면서 문득 펄떡이는 물고기가 떠올랐다. 학교는 고요하게 고여 있어 썩는 물이 아니라 흘러가는 강물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숲 속 절에도 풍경과 목탁이 우는데 아이들의 학교가 어떻게 고요할 수 있을까! 시끄러운 학교가 살아있는 학교다. 지금보다 더 시끄러워져야 하고 더 살아나야 한다. 학교와 아이들이 제 목소리로 살아날 때 우리 사회의 미래도 생명력을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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