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당]조남현 대한적십자사 충북지사 사무처장

가평에 있는 꽃동네에서 숙식을 한 적이 있다. 군 장병에서부터 취업을 앞두고 온 젊은이, 한 달 째 묵는다던 여학생까지 봉사자가 많았다. 필자가 한 일은 시설청소와 장애우 돌보기였다. 건물에 들어서니 누워서 제비새끼처럼 입만 벌리는 환자와 하반신이 마비된 휠체어 아저씨, 신체는 멀쩡한데 정신연령이 낮은 장애자가 한방에 있었다. 그들은 서로 도움을 주고 할 수 있는 일을 분업했다.

휠체어아저씨는 정신장애자의 몸을 빌어서 물건도 옮기고 밥을 짓이겨 누워있는 환자의 입에 넣어주는 일에서부터 이것저것 봉사자들이 할 일을 능숙하게 분담시켰다.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모두 잃었다는 아저씨는 자신이 건강할 때 보았던 넓은 오창뜰과 청주의 개발 소식을 물어 보면서 지난 과거를 회상하고 있었다. 그에게서 평생 꽃동네를 떠나지 못하고 이렇게 살다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절망섞인 말을 들었다. 다른 대부분의 수용자들도 목표없이 사는 것 같았다.

원로화가 한 분은 1층 로비를 화실삼아 수용자들에게 그림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이중섭 화백과도 교분이 있었다는 그는 일주일에 두 번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데 그가 가르치는 것은 미술기법이 아니라 ‘꿈’이라고 했다. 언젠가는 유명한 화가가 되어 밖의 세상으로 나갈 수도 있다는 희망을 준다고 했다. 로비를 활용한 화실이 가득찰 만큼 북적이는 사람들에게서 희망이 보였다.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국제적십자연맹과 위원회를 방문한 적이 있다. 적십자 발상지 방문 일정 중에 이곳의 박물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눈이 감기고, 손이 묶인 아비뇽의 포로들의 석상과 실제 크기의 유대인 수용소였다. 아비뇽의 포로석상에서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철사 줄로 꽁꽁 묶여 사랑하는 가족을 뒤에 두고 미아리 고개를 넘던 우리의 슬픈 역사가 보였다. 유대인 수용소 하나의 크기는 고작 세평 정도였는데 표지판에는 분명히 20명 정도를 가두었다고 적혀 있었다. 안중근 의사가 계셨던 여순감옥의 독방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했다.

오늘날 생명의학의 많은 통계가 아직도 그때의 데이터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생체실험을 감행했는데 이 감방에서는 한계상황에서의 사회성을 알아보기 위해 하루 양식으로는 큰 빵 하나와 물만 공급했다고 한다. 의학적인 생존 기일을 예상하면서 벌인 이 실험에서 예측일보다 훨씬 오래 견디는 수용자의 생존력에 놀랐다고 한다.

이유를 알고 보니 "크리스마스가 되면 유대인을 석방시켜 준다더라"는 단순한 루머 때문이라고 했다. 즉 "어쩌면 살수도 있어"라고 하는 희망이 끈질긴 생명력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살아야 할 이유와 살 수 있다는 희망은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데 우리가 누군가에게 희망을 준다는 것은 그리 거창하지도 않다. 내 몫에는 남의 몫이 함께 한다는 마음으로 나누는 작은 기부와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은 할 수 있어' '네 곁에 우리가 있잖아' 등 따스한 이런말 한마디는 거센 추위마저도 훈풍으로 만들 수 있다.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는 인도주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적십자회비 집중모금이 12월 1일부터 시작된다. 추운 겨울을 앞두고 어려움에 처한 우리의 이웃을 생각하면서 적십자와 함께 하는 봉사와 나눔은 생명을 나누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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