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침반]조재근 온라인뉴스부 차장

만추(晩秋)에 접어든 11월. 낭만과 여유의 상징인 프랑스 파리가 붉게 물들었다. 지금 파리는 낭만보다 슬픔이, 여유 대신 애도의 눈물이 깊게 흐르고 있다.

지난 13일 파리에서 수니파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에 의해 자행된 최악의 연쇄 테러로 130여명이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다. 전대미문의 테러 소식에 전 세계는 경악했고, 주요 건축물에 3색 조명을 밝히며 애도를 표하고 있다.

최악의 테러를 자행한 IS에 응징을 가해야 한다는 국제사회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현재 미군 주도로 프랑스·러시아를 비롯한 다국적군이 IS 심장부로 알려진 시리아 지역에 연일 공습을 퍼붓고 있다. 여기에 국제 해커 조직인 ‘어나니머스(Anonymous)’도 가세해 IS에 대대적인 해킹 공격을 펼치며 사이버 전쟁까지 확전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테러 청정국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충격적인 일이 발생했다. 국내에선 처음으로 국제테러조직인 알카에다 연계 단체 ‘알 누스라 전선’을 추종하는 불법체류 외국인 A(23)씨가 경찰에 검거됐다. 2007년 위조여권으로 국내에 불법 입국한 A 씨는 최근 수개월 간 자신의 SNS에 알 누스라 지지활동을 펼쳐온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이런 추종세력이 국내에 얼마나 있는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전혀 파악되지 않고 있다. 실제 국정원은 국민 10명이 인터넷을 통해 IS를 공개 지지한 사례를 적발했으나, 관계 법령 등이 미비해 인적 사항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국정원은 2010년 이후 국제테러 조직과 연계됐거나 테러 위험인물로 지목된 국내 체류 외국인 48명을 적발해 강제 출국 조치했고, 이 중 인도네시아인 1명이 출국 후 IS에 직접 가입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IS 추종자 검거 사실이 전해지면서 SNS 등 온라인 커뮤니티 상에는 ‘사살된 IS 조직원의 소지품’이라는 사진이 회자하고 있다. 사진에는 여러 소지품 사이 대구에서 사용하는 교통카드와 대구의 한 제조업체 사원증이 발견돼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파리 테러의 심각성은 이미 알려진 것처럼 테러와 전혀 연관성이 없는 불특정 다수의 민간인을 향한 무차별적인 공격, 즉 ‘소프트 타깃’이었다. 참으로 야비하고 잔인무도한 행위다.

최근 보도를 보면 충청권에서 테러 취약시설로 분류된 곳이 130여 곳에 이른다. 파리처럼 하루에도 수천 명의 인파가 오가는 곳은 테러 취약시설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일부 시설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대피소도 없고, 상황 발생 시 행동요령이나 지침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우리나라에서 정부 차원의 테러대응 관련법이나 규정은 1982년 대통령 훈령으로 제정된 ‘국가대테러 활동지침’이 전부다. 30년 넘은 구닥다리 대책으로 날로 지능화하는 불가예측성 테러 위협에서 국민을 지켜내겠다는 우리 정부의 현실이 참으로 암담할 뿐이다.

이번 파리 대규모 테러로 정부와 국회도 크게 한 방 먹은 듯하다. 아이러니하게도 14년째 거들떠보지도 않던 테러방지법에 여야 할 것 없이 너도나도 도장을 찍겠다니 말이다. 최근 급변하는 테러 위협을 볼 때 테러방지법이 제정돼야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법안 제정을 떠나 무엇보다 테러 위협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높이고 그에 걸맞은 대책 마련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2004년 이라크에서 이슬람 무장 단체에 납치돼 살해된 고 김선일 씨 사건 당시 누군가 남긴 이런 말이 떠오른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국가가 아니다” 이 말을 다시금 통감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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