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인호 전문건설회장

미군 장갑차 사고로 희생된 여중생의 죽음에 대한 우리의 울분을 담은 촛불시위를 중단해 주도록 당부하는 시장과 교육감의 기자회견에 대해 일각에서 반박의 목소리가 있음에 대해 걱정스런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반 만년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민족은 얼마나 많은 외세에 핍박받았으며 힘없고 배고픈 설움을 당해 왔는가? 힘있는 자의 싸움에 전쟁터가 되고 이땅이 주인의 의지에 상관 없이 갈래갈래 찢기고 살아 숨쉬기조차 어려운 삶을 얼마나 많이 살아왔던가? 국토가 두 동강나고 한민족이 서로 반목하는, 이 모두가 우리의 뜻과는 상관 없이 그저 당하기만 했고 그런 상황 속에서도 힘있고 풍요로운 삶을 살고자 허리띠를 졸라매고 세계시장을 향해 얼마나 많은 굴욕을 삼키며 피땀 흘려 시장을 개척하고 낯설은 땅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았던 지난날과 오늘 이 시각에도 우리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지 않는가?

서러운 삶에 구비구비를 돌아볼 때마다 힘있는 자의 오만함에 부딪칠 때마다 촛불시위뿐이던가 온몸을 내던지고 싶을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럼에도 시장과 교육감은 왜 촛불시위 중단을 당부했을까? 미국이 좋아서 일까? 미군의 처사가 옳아서 일까?

아니다.

시장과 교육감도 촛불시위를 하는 사람이나 각 시민단체 모든 분들과 똑같은 피가 흐르고 서글프고 서러운 마음, 여중생을 추모하는 마음은 시위자나 시민단체 모든 분들과 같이 소리 높여 외치고 싶은 심정이지만 울분과 서러움을 짖누르며 오늘 이 시점에서 무엇이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인가 천번 만번 고뇌하고 나서 당부했을 것이다.

시장과 교육감의 깊은 마음을 우리에 울분의 감정으로 묵살하거나 오도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의 간절하고 진솔한 주장이 표출되고 우리를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에 경종을 울리고, 우리의 당연한 주장에 세계의 시선이 모아지고 공감의 시각을 조성했다고 본다. 이제 주권국가로서 외교측면에서 국민의 뜻을 담아 우리의 의지를 관철해야 하고, 우리의 의지를 관철함에 있어 "지금까지 우리 국민의 성숙한 의사표현 이외에 시위의 지나침으로 울분의 감정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고조되면 어쩌나" 하는 염려의 충정을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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