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나정균 금강유역환경청장

모처럼 내린 가을 단비도 타들어 가는 대지를 충분히 적시지 못했다. 이제나 저제나 시원한 빗줄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더디게만 흘러간다. 40여년 만에 닥친 충청지역 최악의 가뭄은 이제 전국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금 우리 충청지역은 심각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우리지역에 물을 공급하는 주요 상수원이 계속된 가뭄으로 말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대청댐은 하천유지용수의 공급을 중단했고, 보령댐은 지난 8일부터 제한급수에 돌입한 상태다. 제한급수를 받고 있는 충남 서북부 지역의 주민들은 먹고 자고 씻는 일상생활에 큰 불편을 겪고 있다. 해갈하기 충분한 양의 비가 내리지 않는 한, 언제까지 이러한 불편을 견뎌야 할지도 모르는 실정이다.

봄 가뭄에 이은 마른장마에 가을가뭄까지, 사실 기후변화로 인한 극한 기상현상은 더 이상 새로운 문제가 아니다. 유엔을 비롯한 많은 국제기구와 여러 전문가들은 오래전부터 이러한 문제를 예측하고 대책을 촉구해왔다.

최근 유엔에서 채택한 ‘지구의 미래를 위한 17가지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중 중요한 두 가지 과제가 바로 ‘기후변화대응’과 ‘안전한 식수공급’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극한 기상현상은 앞으로 더욱 악화될 것이고, 특히 대가뭄과 홍수, 수질악화 등의 물 문제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보호에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제 ‘물관리’는 국가안보 차원에서 다뤄질 필요가 있다.

충청지역의 당면한 물 부족 문제해결을 위해 물을 절약하고 재이용을 확대하는 한편, 하천을 연계해 물을 이용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새로운 수자원을 개발하자는 목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물 절약이나 하천 연계 이용, 새로운 수자원의 개발은 그 범위나 수량에 한계가 있거나 환경적·생태적 문제, 지역주민의 반발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당장의 가뭄을 해결하기 위한 응급조치도 필요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필요하다.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수자원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공급’할 것인가와 함께 물 ‘수요’를 어떻게 적절하게 관리하는 데 있다. 하지만 현재 수자원의 공급과 수요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는데, 생산된 수돗물이 소비자에게 도달하지 못하고 중간에 새는 ‘누수’ 때문이다. 2013년 한해 우리나라 상수도 누수량은 6억 5000만㎥. 이는 현재 제한급수를 실시하고 있는 보령댐 저수용량의 5.6배이며 비용으로 따지면 5151억원에 달한다. 보령댐 권역의 누수율만 해도 24%에 이르니, 생산되는 물의 1/4은 채 사용되기도 전에 버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전국 평균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2009년 대가뭄으로 6만여명이 2개월 이상 제한급수를 겪었던 태백·영월·정선 등 강원도 남부권 지역은 이후 국고지원으로 ‘상수관망 최적관리시스템 구축 시범사업’을 추진하여 누수율을 절반이상 줄인 바 있다.

이처럼 노후 상수관망의 정비가 시급함에도 많은 지역에서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예산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재 상수도 관리는 지방자치단체의 업무로 분류되어 있다. 국가예산이 지원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재정이 열악한 시·군에서 개선사업을 진행하기란 더욱 요원한 일이다. 화(禍)는 홀로 오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 대게 이런 지역이 가뭄에 취약한 경우가 많아 매년 피해가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다. 깨끗한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은 국민의 쾌적한 생활을 보장하는 첫 번째 조건이며, 국가가 국민에게 제공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환경복지서비스 중 하나이다. 할 수 없는 일을 붙잡고 끙끙댈 것이 아니라,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뒤로 미루지 말자는 것이다. 내년 정부예산안에 대한 국회심의가 진행 중이다. 가뭄이 심각한 지역에 한해서라도 노후 상수관망 개선을 위한 국고지원예산이 확보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