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문의 窓]충북본사 편집국장

'화향천리행 인덕만년훈(花香千里行 人德萬年薰)'

중국 제후나 선현들의 일화나 우화를 엮어 놓은 ‘설원(說苑)’이라는 고서집에 나오는 말로, "꽃 향기는 천리를 가고 사람의 덕은 만년 동안 훈훈하다"는 얘기다.

충청투데이 괴산·증평 담당 김진식 국장이 오늘(30일) 간경화로 사경을 헤매는 형에게 간을 이식, 새 삶을 이어주는 수술에 들어가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자식된 도리, 부모된 의무’ 마저 외면하고 세상과 돌아앉는 일이 비일비재한 각박한 세상에 동생이 선뜻 형에게 간을 이식해주는 것은 그리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내는 물론, 해군사관학교에 다니는 딸도 김 국장의 이런 결정을 선뜻 반기기는 않았을 듯하다. 한치 걸러 두치라고 했다. 어쩌면 부모님도 아닌 형을 위해 자신의 장기를 내어주겠다는 김 국장의 결정이 마냥 달갑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군 복무 중인 조카(형의 아들)마저 이식조건에 부적합하다는 소식을 듣고, 김 국장은 각종 검사를 통해 숙명과도 같은 ‘적합’ 판정을 손에 쥐어들었다. 간을 이식해야만 꺼져가는 두살 위인 형의 생명을 되살릴 수 있다는 절박감에 망설임 없이 수술동의서에 서명했을 김 국장의 용기가 뭉클하기만 하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 그렇다고 두려움이 전혀 없지도 않았을 게다. 어쩌면 형의 자식(조카)들이 이식조건에 적합했다면, 그가 수술대에 오르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뜻하지 않은 병마로 생사를 넘나드는 형으로서도 동생의 이 같은 선업이 부담으로 다가왔을 법하다. 자신이 아프지만 않았어도 동생에게 이러한 시련을 주지는 않았을테니까. 아니 동생의 조직이 일치하지만 않았어도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을테니까.

김 국장으로서는 그렇다고 생면부지 뇌사자의 장기를 기다리며 애써 이 상황을 외면할 수도 없었을 터다. 아직까지 국내에선 뇌사자의 장기 기증이 극소수에 불과해 이식을 받지 못하고 숨지는 환자가 훨씬 더 많은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실제,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른면 지난해말 기준 심장·간·신장 등 장기 이식 대기자는 국내에 2만 6749명에 달하지만 기증은 2471건에 불과했다고 한다. 간 이식 대기자 역시 지난해말 기준 4422명인데 비해 뇌사 기증자는 404명에 불과해 대기 중 사망률 또한 증가하고 있다. 생체 간 이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나마 간은 재생력이 강해 전체의 70%를 잘라내도 2~3개월이면 원상태로 돌아온다니 다행이다. 간 이식은 흔히 최첨단 의료기술이 적용되는 ‘의학의 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한 연주자나, 한 악기만 '삑사리'를 내도 화음이 깨지는 오케스트라에 비유한다. 기증자와 수혜자의 조직이 일치해야 하고, 의료진의 집도가 훌륭한 하모니를 이뤄야 하기 때문이다.

김 국장은 오늘 서울대학병원 장기이식센터에서 청주 대성여중 행정실장으로 근무하는 형에게 간을 이식해주는 수술에 들어간다. 이제 남은 건 두 사람이 하루빨리 회복해 건강한 모습으로 예전처럼 행복하게 살아가는 일이다.

“김 국장! 장한 일 했어요. 그리고 씩씩한 모습으로 일터로 돌아와 예전 같이 너털웃음을 웃는 날을 기대해 봅니다. 김 국장! 당신 정말 멋져요. 그리고 고생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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