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김용찬 충남도 기획조정실장

국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조세제도 개편을 준비하던 어느 나라는 전 국민의 약 3%에 달하는 17만명을 대상으로 일일이 찬반의견을 조사했고 또한 그동안의 징세실적을 분석해 54단계의 과세등급을 가진 정교하고 공평한 조세제도를 25년에 걸쳐 만들어 시행했다. 어느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사례일까? 아니다. 우리 역사 상 가장 존경 받는 인물 중 하나인 세종대왕이 ‘공법(貢法)’을 제정하던 과정을 요약한 것이다. 세종 즉위 당시 조세제도인 ‘답험손실법(踏驗損實法)’은 '부익부 빈익빈'의 폐단이 상당했는데, 세종은 위와 같이 방법을 통해 완벽에 가까운 ‘공법’을 만들어 1421년부터 시행했으며, 1634년까지 무려 213년 간 우리 조세제도로 운영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정부에서 한가지 정책을 수립·시행할 때 정책 환경을 면밀히 조사·분석하고, 정책의 기대효과를 사전에 객관적으로 예측하는 등 과학적·체계적인 방법을 거칠 경우, 그 정책은 합리성과 지속성을 보장 받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는 도구가 바로 '통계'다. 600년 전 세종은 그 원리를 이해하고, 지금으로 치면 대국민여론조사, 세금 징수실적 분석,시뮬레이션 예측 등의 통계기법을 활용했던 셈이다.

통계의 중요성은 정책 환경이 더욱 복잡·다양해진 현대에 와서는 더욱 강조되고 있다.

근래 지방자치가 성숙하면서, 지방정부 차원에서도 지역통계의 생산과 분석·활용의 필요성이 늘어났다. 현재 국가 전체의 관점에서 생산되고 있는 중앙정부의 각종 통계들은 지방정부가 그 지역의 실정에 맞는 정책을 수립함에 있어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데 미흡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서 우리 충남도는 도정 현실을 반영하는 각종 통계를 생산하고 분석·활용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러한 결과 최근에는 몇가지 가시적인 성과를 거뒀다.

지난 2월에 발표한‘생활체육실태조사’에서는 최근 활성화되고 있는 생활체육 영역에서 우리 도민들의 참여 비율, 목적, 종목, 개선필요사항 등을 면밀히 파악했고, 개인맞춤형 생활체육정책을 수립하는데 활용 중이다. 그 결과가 9월에 통계청에서 전국 400여개 민·관 기관의 통계업무평가에서 자치단체 중에 유일하게 우수사례로 선정되는 부수적인 결실도 있었다.

또 7월에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업무협력을 맺었는데, ETRI에서 보유한 빅데이터 기법을 우리 도정에 접목해 충남도의 향후 20년, 30년 뒤의 인구변화와 보건복지·교육 수요, 산업구조 변화 등을 내다 보고, 중장기 도정 방향을 구상하는데 기초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와 더불어, 지난 12일에는 ‘청년문제 관련 현황’ 분석자료를 발표했는데, 중앙정부 차원에서 포착할 수 없었던 사실들이 드러났다. 충남도 청년 인구 중 2/3 이상이 천안, 아산 등 북부 도시지역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아울러 매년 청년 인구의 40% 가량이 학업·취업 등의 사유로 거주지를 이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 충남도에서는 도시-농촌을 차별화하고, 전통적인 지역연고 개념을 넘어서는 청년지원정책들을 계획하고 있다.

재차 강조하지만 정확하고 시의적절한 통계자료의 수집·생산, 유효한 기법을 통한 분석·활용은 정책의 질을 좌우한다. 이러한 기본적인 절차 없이 추상적이고 수사(修辭)적인 논리만을 가지고 만든 주먹구구식 정책은 전시성 행정에 그칠 공산이 크다. 충남도는 기존에 보유 중인 다양한 통계지표들의 관리는 물론, 경제·복지·문화 등 주요 정책분야별로 새롭고 의미 있는 통계들을 수시로 발굴·분석하고 이를 산적한 도정 현안들을 해결하는데 활용할 방침이다. 모쪼록 이러한 노력들이 궁극적으로 우리 도민들의 행복으로 귀결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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