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질풍노도의 계절이다. 찬바람이 옷깃에 닿자마자 마음이 얼어붙는다. 바람이 성나고 사람이 성나고 마음이 성난다. 이럴 땐 따뜻한 국물이 필요하다. 탕(湯)은 마음의 온도를 담아내는 그릇이다. 그 맑은 국물 속에 오사바사한 정이 들어있고 사근사근한 배려가 녹아있다. 그런데 따뜻해지고 싶은 계절엔, 차가운 사람들이 두려워진다. 사람이 사람을 무서워하는 건, 사람 자체가 무서운 게 아니라 사람의 몽니가 두려운 것이다. 괜히 시비 걸고, 몽짜 부리고, 남 탓만 하는 군상들이 많아지고 있다. 몽니 부리는 사람들의 화(火病)는 얼굴에 깊은 고랑을 만든다. 심술보다. 이들의 주름은 세월의 잔상이 아니라, 주름의 시간들이다.

▶그는 오늘도 뚜벅뚜벅 회사로 간다. 그러나 발걸음엔 눈물만 가득하다. 질척한 그 침묵의 울음소리는 어제도 그제도 그랬다. 다만 오늘은 달라지겠거니 하는 일말의 희망을 품었기에 아침 라면이 꾸역꾸역 들어간 것이다. 사사건건 삐딱하게 구는 자신을 보면 마음 한 자락이 들까분다. 이는 '나를 좀 봐달라는 간절한 외침'이다. '마음대로 하라'고 당당하게 외쳤지만 사실은 '내 마음을 헤아려 달라'는 반어법이다. 짖어대는 개는 물지 못한다. 짖는 건 가까이 오지 말라는 간곡한 경고다. 만약 물어뜯을 자신이 있는 개라면 짖지 않고, 기다렸다가 물어뜯는다. 거세당한 슬픔은 그래서 절박하다.

▶아내는 잔소리를 덜 하는 편이다. 아니, 거의 하지 않는다. 결혼 전 확약을 받았고, 그 약속이 불문율로 지켜지고 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잔소리가 간헐적으로 엿보인다. 아침에도 잔소릴 한 그릇 먹었다. 물론 잔소리의 8할은 술이다. 건강을 해치니 술청을 멀리하라는 당부다. 잔소리를 할 때 최고의 회피 방법은 대꾸를 안하는 것이다. 대꾸가 없으면 시들해진다. 당장 맞받아치고 싶겠지만 3초만 참으면 몽니는 소멸된다. 잔소리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먼저 이유를 듣고 최대한 짧게 할 것. 한 번에 한 가지 주제만 논할 것, 비교하거나 반복하지 말 것, 뒤끝을 만들지 말 것 등이다. 소크라테스가 아내 크산티페의 잔소리에서 탈출한 방법도 36계 줄행랑 아니었던가. 한걸음만 더 뒤로….

▶그녀는 오늘도 터덜터덜 회사로 간다. 그녀가 웃지 않는 건, 절실함이 없기 때문이다. 풀 죽어 늘어진 어깨를 다독이며 격려하는 한마디가 없기 때문이다. 편 가르기와 집착, 반목과 질시, 강샘과 증오, 거짓과 험담, 이간질이 난무하는 우리네 삶은 처절하다. 갈매기가 오래 못사는 건 두려움과 짜증, 그리고 지루함 탓이다. 같은 지역을 빙빙 돌면서 한정된 먹이를 찾는 일에만 매달리다 보니 웃음이 나질 않는 것이다. 절실함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힘이다. 사는 건 누구나 거기서 거기다. 웃음도 절실하면 웃어진다. 농투성이 같은 우리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기를….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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