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도 생일도 직업까지 '닮은 꼴 부자'

▲ 서철모 충남도청 정책기획관
충남도청에 근무하는 서철모(41) 정책기획관은 아버지 서승재(77)씨와 닮은 것이 세 가지 있다. 그건 바로 서씨가 64년생, 아버지는 28년생으로 띠(용띠)가 같고, 음력으로 생일(10월 7일)도 같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공무원을 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공통점이다.

아버지 서승재씨는 그때 당시 지역에서 공부 좀 한다는 수재들이 다닌 예산농고와 수원농대를 졸업하고, 6·25전쟁이 끝난 뒤 임업직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서씨는 공무원으로서의 아버지를 이렇게 기억한다.

"할아버지가 아버지 9세 되던 해에 돌아가셨어요. 그런 탓에 힘들게 사셨지요. 그런 당신이 가난만은 물려주지 않으시려는 생각으로 오로지 삶에 대한 애착으로 공직에 전념하며 묵묵히 사셨어요. 아버지는 평범한 분이셨어요. 특별히 공무원이라는 직책으로 위세를 부리시지도 않으셨고 빠른 승진을 위해서 허리를 굽히지도 않으셨어요. 그런 덕분인지 승진은 더디셨고요."

자신도 공무원이기에 아버지의 공직생활을 서씨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 지난 6월 아버지 서승재(사진 오른쪽)씨와 경상북도 울진 해변가에서 닮은꼴 부자가 나란히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아부를 잘 하지 못해 승진이 느렸다는 얘기를 하면서 서씨는 공무원 사회가 자칫 타인들에게 잘못 비쳐질까 봐 걱정하는 눈빛까지 보였다.

서씨는 서울 중앙부처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뒤 한달 전 충남도청으로 발령을 받아 현재 대전으로 혈혈단신 내려왔다.

그러나 다행히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곳에 살고 있어 다시 부모품으로 돌아가는 효자(?)가 돼 버렸다. 처와 아들 2명은 서울에 둔 채 말이다.

"요즘은 매일매일 어머니가 해 주시는 밥을 먹을 수 있어 또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입니다. 아버지는 91년에 정년퇴직을 하시고 둔산동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한자서당을 무료로 운영하셨어요. 아버지는 늘 책과 떨어지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아버지 덕에 어렸을 때부터 목민심서니 명심보감 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지요."

서씨는 그러면서 아버지가 자주 해 주시는 글귀를 종이에 쓰기 시작했다.

아마도 아버지 스스로가 자칫 탐욕을 부릴지 모를 상황을 피하기 위해 공무원으로서 자기만의 주문이었을 것이다.

만족할 줄 알면 가히 기쁠 것이요, 탐욕에 힘쓰면 곧 우환이 있을 것이라(知足可樂 務貪則優), 일시의 분함을 참으면 백일의 우환을 면할 수 있다(忍一時憤 免百日之優).

이 모든 글귀는 명심보감에 있는 글귀지만 이젠 서씨의 가슴속에 뚜렷이 각인, 생활의 지표가 되었다.

비록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굳이 대(代)를 잇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의 모습을 동경했던 짝사랑이 아무도 모르게 자라왔을 것이다. 그래서 막내 녀석은 큰형처럼 교사가 되기를 바라셨지만 대전고와 충남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뒤 아버지가 정년퇴직(91년 12월)하기 두달 전 행정고시에 당당히 합격했다.

30여년이 넘는 공직생활을 5급 사무관으로 마무리한 아버지는 아들, 그것도 막내가 처음부터 5급으로 시작하는 것에 대한 뿌듯함에 그렇게도 기뻐하셨다고 서씨는 회고한다.

"신기했지요. 아버지가 퇴직하시기 바로 전에 행정고시에 합격해 아버지와 함께 공직생활을 했으니까요. 천상 국민에 봉사하라는 하늘의 부름인가 봐요."

서씨는 퇴근 후에 최근 큰 이슈가 되고 있는 행정수도와 전국공무원노조 파업에 대한 이야기를 아버지와 주고받으며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해 일하는 것이 공무원의 일인데, 근로자로서의 단체행동권을 요구하는 것에는 많은 이견이 있기에 시기상조라는 부자간의 의견일치를 본다고 한다. 도청에서 행정수도에 대한 이런저런 움직임을 아버지에게 말씀 드리며 자문도 구하고 대화거리로도 사용한다고 한다.

서씨는 3남 1녀 중에 막내다. 큰형이 아버지의 글재주를 이어받아 교육계에 몸담고 있고, 막내인 서씨가 아버지 대(代)를 잇게 됐다.

서씨는 6여년 전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던 기억을 되뇌이며 얼굴이 굳어졌다.

"98년 2월이었어요. 보통 때와는 달리 당시 잠을 설치며 새벽 4시까지 잠을 못잤어요. 그런데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새벽을 밝혀 가며 아버지 전 상서를 쓰고 잠시 눈을 붙였는데 새벽 6시에 어머니께 전화가 오더군요. 아버지께서 암에 걸리셨다고. 그것도 초기가 아닌 2∼3기 식도암이라고…."

그때의 느낌을 이야기하면 항상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표출된 현상으로 서씨는 기억한다. 그런 당신이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지금은 쇠약하지만 작년에는 어머니와 50주년 금혼식(金婚式)도 하셨다. 차후 10년 뒤에 60주년 기념식도 두 분이 하시기를 서씨는 기원한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들은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를 닮아 가고 있다. 서씨도 불혹을 넘긴 지금 아버지를 닮아 가는 자신이 신기하고 또 만족스럽다고 한다.

한 가지 일에 대를 이어 가는 서철모 기획관과 그 아버지 서승재씨. 두 사람의 모습에서 친구처럼 가까운 정겨움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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