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김덕수 공주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역사 교과서 파동은 교육부가 편수(編修)기능의 부활과 검정 강화로 가닥을 잡는 것 같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비껴간 채, 서둘러 봉합만 하려는 느낌이다. 그동안 국사학계는 '한국 역사'라는 특수성 때문에 폐쇄적·배타적인 색채가 강했다. 그러다보니 이분법적·기계론적 역사인식에 따라 이념문제에 집착하는 우(愚)를 범했다.

역사 교과서 문제의 본질은 일부 잘못 기술된 내용의 자구(字句)수정에 있지 않다. 근본적으로 역사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어떻게 기술할 것인가의 사관(史觀)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계급 타파와 민족해방을 주장하는 민중사관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자기성찰이 없는 한, 역사 교과서 파동은 계속될 것이다.

민중사관은 우리 근현대사를 제국주의와 민주화를 위한 저항사(抵抗史)로 규정짓고, '친일'과 '독재'라는 올가미를 씌워 '건국'과 '산업화' 세력을 사정없이 매도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 역사를 직시하는 '사실 인식'의 적합한 눈인가? 아니다. 그것은 외눈박이의 역사읽기에 불과할 따름이다. 민중사관을 따르는 사람들은 '친북'과 '종북'도 친일과 독재 못지않게 비이성적이고 비도덕적인 것임을 냉철하게 인식해야 한다.

역사에는 결코 단절이나 비약이 없다. 역설적인 얘기지만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는 이승만과 박정희의 노고(勞苦)와 무관하지 않다. 공산주의체제로 직행할 위험이 컸던 좌우합작의 유혹을 극복하고 힘겹게 이룬 건국(1948), 한미상호방위조약(1953), 문맹 퇴치를 위한 국민교육강화, 한강의 기적 등이 없었던들 지금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과연 가능했겠는가? 물론 우리 스스로 독립을 쟁취하지 못한 탓에 남북분단의 비극을 맞이했고, 건국과정에서 친일행위자에 대한 처벌이 미온적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 이면에는 좌익분자들의 준동이 있었음도 인정해야 한다. 또 이승만과 박정희의 권위주의체제 하에서 자행된 독재, 인권탄압, 부정부패 등도 솔직하게 기술하고 청소년들에게 반면교사로 가르쳐야 한다.

아울러 남북분단, 6·25전쟁, 탈북·빈곤·아사(餓死)를 유발시킨 공산주의체제의 한계점과 그 체제를 선택한 책임이 김일성에게 있음도 기술해야 한다. 핵무기 개발, 3대 세습, 북녘동포에 대한 인권탄압,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을 비롯한 북한의 대남도발에 대해서도 정직하게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균형 잡힌 역사기술이며, 그래야 진정한 역사교과서다.

또 역사는 정치·경제·사회문화·기술 등을 망라하는 인간생활의 집적체다. 이는 역사 교과서 집필이 역사학자들만의 고유영역이 아님을 시사한다. 이제 구국(救國)차원에서 역사학계의 존경받는 원로들과 지적(知的)정직을 추구해온 정치사, 경제사, 인류문화사, 과학기술사, 전쟁사 등을 전공한 석학들이 집필에 참여해야 한다.

이번 역사 교과서 파동에서 드러났듯이 검인정 체제가 갖는 '다양성'의 이점을 송두리째 파괴한 세력은 유감스럽게도 다양성을 주장해온 좌파 역사학자, 좌파 역사교사, 좌파 시민단체였다. 그들이 주도하는 교육현장의 '편향'과 '왜곡'을 종식시키고 올바른 역사교육의 장을 마련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을 수립해 나가야 한다.

한 가지 차선책은 근현대사와 관련된 다방면의 석학들이 대거 참여하는 '근현대사 연구회'를 교육부장관 직속의 독립적인 상설기구로 발족시켰으면 한다. 그리고 임기제로 운영하면서 그들이 집필대강, 세세(細細)집필기준, 검정기준 등을 마련하고 그에 따라 역사 교과서의 마지막 검점까지 맡도록 했으면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국민들에게 자세히 공개해주길 기대한다. 자기들끼리의 음모와 왜곡은 항상 밀실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다만, 교육부는 코디네이터 역할에 한정하고 어설픈 정부개입을 시도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교육부에게 기대할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