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국회 의원회관·지역사무실 가보니
국회 의원회관 1층 안내실 택배로 발 디딜 틈 없을 정도 손수레로 쉼 없이 상자 옮겨 지역 의원 사무실도 사정 비슷
김영란법 처리 기강확립 공염불... “임기 마지막 평년비 감소” 설명

▲ 추석 연휴를 나흘 앞둔 22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1층 안내실에 전국 각지에서 의원실 앞으로 도착한 추석선물 택배가 가득 쌓여있다. 이병욱 기자
추석 연휴를 나흘 앞둔 22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1층 안내실은 택배 물품으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전국 각지에서 의원실로 보낸 추석 선물이 제법 넓직한 안내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택배업체 직원들은 손수레를 이용해 회관 밖에서 안으로 쉼없이 선물상자를 옮겼고, 일부는 수령할 의원실 호수를 상자에 기재하고 있었다.

선물상자의 양은 얼핏 봐도 상당했고, 그 종류도 다양했다. 사과나 배 같은 과일을 비롯해 홍삼, 표고버섯, 건어물 등 지역 특산물이 주를 이뤘다. 황금색 보자기에 싸인 선물세트도 눈에 띄었다.

택배를 관리하는 직원이 기자에게 다가와 무덤덤한 말투로 “어느 의원실에서 오셨냐”고 물었다. 기자가 머뭇거리자 직원은 뒤이어 도착한 의원실 비서로 보이는 여성 2명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고, 신분증을 확인한 뒤 이들이 가져온 손수레에 상자 예닐곱개를 실어줬다. 택배를 수령한 이들은 다소 무거운 듯 낑낑대며 손수레를 엘리베이터로 옮겼다.

비록 의원회관만큼 엄청난 양은 아니었지만 지역 의원 사무실도 사정은 비슷했다. 한 의원 사무실 한켠에는 선물로 보이는 택배 상자와 보따리가 포개진 채 쌓여있었고, 다른 사무실에는 포도와 사과 상자가 포착됐다.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대체로 ‘추석 선물’이란 말에 “들어오면 바로 반송시킨다”, “잘 모르겠다” 등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한 사무실 직원은 “우리는 (추석 선물을 받지 않으려고) 일부러 사무실 주소를 알리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답을 하지 못했다.

올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른바 김영란법을 처리하며, 공직기강 확립을 다짐한 정치권이지만 추석 선물공세에는 대부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었다.

이달 초에는 새누리당 초·재선 의원들이 ‘선물 돌려보내기’ 운동에 나서겠다고 선언했고, 어쩔 수 없이 들어오는 선물은 기부하는 방안을 논의했지만 실효성은 없었다. 그나마 김영란법과 더불어 19대 국회 임기 마지막 추석이라는 점에서 평년에 비해 배달되는 선물이 줄었다는 게 의원실 등의 설명이다.

지역 의원실의 한 인사는 “원래 임기말 명절에는 선물이 많이 들어오지 않는다. 당장 내년에 (의원이) 바뀔지도 모르는데 (기업이나 기관에서) 전부 챙기지는 않을 것”라고 말했다.

국정감사가 추석 이후에도 계속되는 탓에 괜한 구설에 오를까봐 선물을 안 받는다는 의원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예년에 비해 줄었다는 추석 선물의 양도 이처럼 상당한데다가 연휴 시작 전까지 선물을 받을 시간이 아직 남아있어 이러한 설명이 엄살로 들린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의원실마다 명절 선물대장을 적고 있지만 이를 외부에서 확인할 방법은 없는 실정”이라며 선물 투명화 방안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서울=이병욱 기자 shoda@cctoday.co.kr

안휘재 기자 sparklehj@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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