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당]류용환 대전시립박물관 관장

대전의 도시 정체성이나 문화 특성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과학도시나 선비문화를 든다.

이러한 대전이 최근 '문중문화 도시'로 부각되고 있다.

대전에는 국내 최초의 성씨 테마공원인 뿌리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그곳에 우리나라 유일의 족보박물관이 건립되어 운영 중이다. 아울러 내년 9월에 개관하는 국내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효문화진흥원이 지난 4월초 뿌리공원내에서 기공식을 가졌다.

이러한 시설들로 인해 대전은 지금 각 문중들의 순례지인 메카 역할을 하고 있다. 물질만능과 팽배한 개인주의 때문에 가정과 사회가 급속히 파괴되고 있는 오늘날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성씨들의 종원(宗員)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매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전에서 급속히 변모하는 문명사회에 적응하느라 잊었던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에 대한 반성 그리고 그를 되돌아볼 기회로 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대전시립박물관이 22일부터 한국의 명가란 주제로 '광산김씨' 특별전을 진행한다.

역사박물관 개관 3주년 기념행사인 이번 전시는 조선시대 양반 중의 양반이라는 3대 국반(國班)에 들고, ‘회덕향안(懷德鄕案)’에서 우암 송시열이 호서의 3대 명문가 가운데 으뜸으로 꼽았던 명문거족(名門巨族) 광산김씨의 역사적, 문화적인 가치를 재조명하는 자리이다.

오랜 시간 가꾸고 전해왔던 광산김씨 문중의 여러 모습들을 각각 살펴볼 수 있는 기회이다.

또 이번 특별전에서는 숙종비 인경왕후의 왕실 어보(御寶)가 우리 지역에서 최초로 전시된다.

이와 함께 조선전기 4대 서예가 중의 하나였던 자암 김구(金絿)의 마치 춤추는 듯한 진본 글씨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요리책인 ‘수운잡방(需雲雜方)’도 공개한다. 특히 시(詩)·서(書)·화(畵) 삼절(三絶)로 불렸던 죽천 김진규의 초상화와 도난 맞았다가 극적으로 되찾은 김진규의 청화백자 지석이 학계 최초로 선보인다.

현대문명이 야기한 개인주의와 물질만능주의는 인간의 가치와 도리를 중시하는 기존의 가치관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 문화적 위기를 극복할 총체적인 대안 마련은 현대 한국사회의 중요한 과제이며 그런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 문화론적 주제로 ‘문중(門中)과 문중문화(門中文化)’를 들 수 있다. 동성동본에 바탕하며 강한 응집성을 보이고 있는 성씨 문화와 그 연장으로서의 문중문화는 전통적 가치관인 뿌리의식 및 예의식과 깊게 관련 있다. 기호유학의 중심지이자 예학의 본고장인 대전이 오늘날 문중문화의 중심이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앞으로 대전이 문중문화의 중심도시로 굳게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콘텐츠 개발이 필수적이다.

단순한 시설 관람만으로는 곧 실증을 유발하고 타 지역에서 경쟁 시설을 도입하면 지속적인 관광객 창출이 이루어질 수 없다.

과학도시에 더한 인문도시로서 대전이 문중문화 개발을 위해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자문과 문중의 요구를 반영한 섬세하고 치밀한 전략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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