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가 박홍순 교수 VS 궁중음식문화협회장 김상보 교수

"우리 전통문화는 우리 손으로 지키겠습니다."

다른 곳에 한눈 팔지 않고 오직 한 길을 걷는다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전통문화를 지키기 위해 몰두하는 사람을 보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사)궁중음식문화협회장 김상보(金尙寶·54) 대전보건대 교수와 동양화가 박홍순(朴洪淳·51) 공주교대 교수는 모두 '한국의 문화' 찾기에 열정을 바친다는 부분에서 서로 닮았다.

▲ 깊고 담백한 맛과 멋을 내기 위해 열정을 쏟아붓는 김상보(사진 오른쪽) 교수와 박홍순 교수는 기다림을 배우고 거기에 사랑과 경의를 담아내는 것이 진정한 전통문화의 재현이라고 입을 모은다.
/전우용 기자
10여년 전 한 모임을 통해 알게 된 김 교수와 박 교수는 궁중음식과 동양화라는 서로 다른 분야의 일을 하지만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애착과 한학에 대한 조예가 깊다는 점에서 서로를 인정하고 격려하는 단짝 친구다.

김 교수는 1년 전 궁중음식의 체계적인 연구와 전승을 위해 지역 최초로 대전시 서구 탄방동에 (사)궁중음식문화협회를 열며 박 교수를 감사로 위촉했다.

두 사람의 이런 우정은 지난달 21일부터 27일까지 롯대화랑에서 열린 박홍순 교수의 동양화 전시 오픈행사에서 '동양화와 함께하는 조선시대 궁중음식의 재현'이라는 이색 행사로 펼쳐졌다.

묵향과 궁중음식 속에 살아 숨쉬는 전통을 재현해 낸 이날 행사에서 김 교수는 정조대왕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 환갑(1795년) 잔치상에 올렸던 각색병 1기를 선보였다.

이날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은 물리적 전시공간만 같은 '따로따로' 전시가 아닌 궁중음식과 동양화가 조화를 이룬 '한국 전통문화 재현의 현장'이란 점에서 일맥 상통함을 새롭게 여겼다.

김 교수는 "평생 궁중음식을 연구해 온 사람으로서 참 뜻 깊은 일이었다"며 "박홍순 교수의 작품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함께 전시회를 연다는 것만으로도 개인적으로도 뿌듯했지만 우리의 소중한 음식문화의 일부를 되살려 일반인들에게 알린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었다"고 당시 소감을 밝혔다.

이들은 '감칠맛난다', '담백하다'는 표현이 음식뿐 아니라 동양화에도 무리 없이 적용되는 이유가 결국 우리 조상들의 생활상에 뿌리를 둔 결과라고 설명한다.

김 교수는 "문헌에 적힌 음식들 중 현재는 사라진 음식들도 적지 않다"며 "어쩌면 각종 음식의 홍수에서 설자리를 잃은 궁중음식들이 요즘 동양화의 설자리와 비슷하지 않을까" 반문했다.

'전통과 현대'라는 화두를 들고 고민해 온 사람들답게 김 교수와 박 교수의 몸짓이나 말투에선 절제와 자유, 세속과 탈속 등 상반된 가치들이 교묘하게 오갔다. 그들이 걸어 온 길은 얼핏 탄탄대로였지만 내면은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고향인 유성 장대동에서 훈장이던 할아버지 밑에서 한학을 배운 박홍순 교수는 어린 시절 시(詩)·서(書)를 익히고 화(畵)의 길로 접어들 수 있었다.

화풍에 얽매이지 않는 그의 자유로운 붓은 서예에서 산수까지 두루 섭렵한 탄탄한 기본기에서 출발한다.

굽이치는 먹물의 흔적과 무한한 정신세계를 꿈꾸는 기운생동의 운필은 여전하지만 그의 최근작에는 물(水)의 기운이 화면 전체에 넘쳐 흐르고 있었다.

지난 90년 공주교대 교수로 임용된 뒤에도 그는 '교수작가'라는 울타리에 안주하지 않고 예술적 도전을 감행했다.

생명의 근원인 '물과 빛'을 주제로 작업해 온 최근작 '빛과 어둠의 대담'은 반사되는 빛이 아닌 어둠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음의 빛으로 사랑을 그리고 있다.

검은 숲을 가로지르는 작은 폭포와 야트막한 둔덕의 덤불, 그리고 하늘을 향해 솟은 나무. 박 교수의 그림 속 풍경은 고작 이런 것들의 조합이지만 그의 그림은 결코 단조롭거나 지루하지 않다. 작가의 상상력은 하늘에 맞닿은 길만큼이나 무한대로 뻗어간다.

김 교수는 "동양화에 대해서 잘 알진 못하지만 박 교수의 그림에선 풍경화에서 흔히 놓치고 있는 '힘'이 느껴진다"며 "생동감이 넘치는 그의 그림에서 영혼의 위안을 느낀다"고 말한다.

박 교수는 "수묵화야말로 정신과 소재가 일치하는 그림"이라며 "화가에게서 그림은 밥 먹는 일과 같은 것이어서 삶의 어느 순간이 바로 그림의 일부가 되며 작가는 그래서 찰나의 순간을 위해 매순간 깨어 있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김 교수는 손짐작 눈어림으로 내려와 체계화되지 않은 우리 궁중음식 만들기를 꼼꼼히 정리, 소중한 사료로 남기고 있다. 일어·중국어로 된 고서적을 일일이 해석하고 고증해야 되는 일이지만 말로만 듣던 것들이 책으로 정리된 것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김 교수는 "전통요리연구서는 절기별, 행사별, 신분별로 다양하게 기록돼 있지만 아직도 대부분은 장서각에서 잠자고 있는 상태"라며 "내년에는 우리의 그림은 물론 소리와 춤이 함께하는 궁중음식 전시를 통해 전통요리를 생활 속의 문화로 끌어내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박 교수는 "작품 안에서 생각을 시작하고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때문에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적어 아내와 딸에게는 한없이 미안하기만 하다"며 "아직 미혼인 김상보 교수는 궁중음식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지에 이른 만큼 빨리 좋은 배필을 만나는 것에 힘써야 할 때"라며 너스레를 떤다.

박 교수의 그림에선 상생과 사랑과 만남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더 따뜻하고 더 사람냄새 나는 것들을 그리고 싶다"는 박 교수와 "너무 일에만 몰두하며 살다보니 주변 사람들을 챙기지 못하며 살았다"는 김 교수는 전통문화에 대한 애정을 과시하며 서로에게 힘을 주고 있다.

박홍순 교수 프로필

▲공주대 대학원 졸

▲개인전 5회, 한·일 미술교류전(2001)·공주 국제미술제(2004) 등 다수 국제전 참여

▲대전·충남미술대전 대상(1989) 수상

▲현 공주교대 미술교육과 교수

▲가족:아내와 딸

김상보 교수 프로필

▲한양대 대학원 졸

▲일본 국립 민족학박물과 객원교수(1993∼1994)

▲문광부 우수학술도서 선정상(1995·1998년) 수상

▲현 대전보건대 전통조리과 교수, 대전시 문화재 위원

▲가족:미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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