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구석에 가마솥 솥뚜껑 하나가 있습니다. 한때는 어머님 손에서 반들반들 윤이 났을 솥뚜껑.

8남매의 밥이 끓었을 솥을 덮고 고단한 어머니의 인생과 함께 해왔을 솥뚜껑이 주인 잃고 10여년 헛간 한쪽에서 비 맞고 눈 맞고 세월과 함께 녹슬고 삭아져 가고 있습니다. 잔치날에는 전을 부치는 도구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솥뚜껑입니다.

돼지기름을 휘휘 저으며 치지직 소리가 맛있게 났을 이 솥뚜껑. 얼마나 많은 날들, 홀로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렸을까요? 올해 본격적으로 집을 치우고 손을 보면서 이 솥뚜껑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가마솥은 군데군데 구멍이 나서 쓸모가 없어졌습니다. 예전에는 가마솥 구멍을 때우는 모습도 있었지만 무거운 가마솥이 양은솥에 밀리면서, 더 편리한 전기밥솥에 밀리면서 가마솥은 때울 수 있는 길도 잊혀졌습니다.

가마솥 뚜껑을 우선 깨끗이 닦았습니다. 녹물이 끝없이 나오더니 말간물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가을이 익은 햇살에 바싹 말렸습니다. 그리고 들기름 찌꺼기를 정성스레 발랐습니다. 아무 생각도 없이 그 일에 몰두했습니다.

아….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자꾸 일어나서 복잡하게 얽히려 할 때는 무언가에 집중하는 일이 좋습니다. 그저 단순한 노동이 주는 몰두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오직 그 일에만 집중하게 합니다. 들기름을 먹은 솥뚜껑은 예전의 까만색을 찾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햇살에 뒀다 또 한 번 들기름을 먹이니 이젠 제법 그럴싸한 모양새를 갖췄습니다. 이것의 용도를 찾았습니다. 우리 식구들에게 맛있는 삼겹살 구이를 해주려고 합니다. 그러다 엎어놓고 부추나 호박 매운고추를 썰어놓고 전도 부쳐주려 합니다. 무거워 번거롭지만 예전의 향취를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추석이 기다려집니다.

추석에 식구들이 모이면 여기에다 고기를 지글지글 굽고, 묵은 김치도 씻어서 굽고, 달랑거리며 달린 가지도 구워서 고향의 맛을 보게 해주고 싶습니다. 손 쉬운 전기 구이 프라이팬도 있지만 이렇게 가마솥 뚜껑에 구워먹는 고기맛은 아마 형제들에게 감탄사를 나오게 할 것이고 자꾸 이 맛 때문에 고향을 찾게 할지도 모르니까요.

(이 글은 8월 31일 작성됐습니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