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의 재발견⑬
중구 문화2동 천근마을 골목
천근로 60번길 일대 약 200m 구간
마을사람 마음 합쳐 직접 벽화 조성
꽃·나무 그려 사시사철 봄기운 가득
수놓아진 그림선 알록달록한 情흘러

진한 사람 내음을 곳곳에서 느껴지는 골목이 있다. ‘이웃사촌’이 옛 말이 된지 오래이고, 옆집에 누가 사는지조차 모르는 요즘 세상과 격을 다른 곳이다. 바로 대전 중구 문화2동 ‘천근마을 골목’이다. 천근마을은 충남기계공업고등학교에서 남쪽으로 ‘천근로 27번길’을 따라 내려오면 쉽게 찾을 수 있다.

그저 보통의 골목길, 새로울 것 없는 생활공간으로 여길 수 있지만, 정작 이곳을 찾게 되는 사람들은 길게 늘어선 벽화에 금새 눈길을 뺏긴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천근로 60번길 일대 약 200m 구간에 펼쳐진 그림들은 행인들에게 눈요기를 전한다.

어느 담벼락에는 나무를 그려넣어 마치 가로수를 연상시키는가 하면, 바람개비가 꽂혀있는 담벼락에는 바람개비를 쏙 빼닮은 해바라기 그림이 그려넣었다. 골목길 중간에 위치한 네거리에는 색색의 꽃과 나무, 개구리가 그려져 사시사철 봄기운이 가득 차 있다. 물론 전문 화가가 그린 고상한 그림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 일부 구간은 예술성은 커녕 유치해 보이는 부분도 없지 않다.

하지만 집 담벼락마다 수놓아진 그림에선 알록달록한 ‘정’이 흐른다. 이곳 마을사람들이 마음을 합쳐 직접 조성한 뜻깊은 벽화이기 때문이다. 이곳 천근로가 정으로 가득차게 된 계기는 2년전 8월, ‘골목길 벽화 그리기 사업’이 시작되면서부터다. 당시 골목 주민이던 박연서 씨가 이 사업을 주도했다.

“안 그래도 지역이 낙후된데다, 이웃 간 단절도 심해 골목이 더욱 칙칙하게 느껴졌어요. 옆집에 살아도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일이 많은데 ‘이것은 좀 아니다’ 싶더라구요.”

박 씨의 제안과 중구청의 200만원 사업비 지원으로 시작된 골목 채색은 이내 마을을 하나로 만들었다. ‘무엇을 그릴까, 어떻게 마을의 화합을 그림으로 표현할까.’ 벽화에 대한 내용으로 시작된 화제는 곧 개인적인 얘기로 번졌고, 형님·동생이라는 호칭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함께 페인트를 칠하는 동안 앞 집엔 누가 살고, 옆집엔 요즘 무엇이 관심사인지 모두가 알 수 있었단다.

차가운 무관심과 반목이 가득했던 골목이 한 순간에 애정과 화합의 공간으로 재탄생한 셈이다. 박 씨는 “전에는 주차나 쓰레기 문제로 싸우는 일도 더러 있었지만, 벽화를 만들고 얼굴을 튼 이후로는 그런 일이 없어졌다”며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을벽화 그리기는 문화 2동 새마을회로 바통이 넘겨져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얼마전에는 천근로 60번길에서 2개 골목을 지나 위치한 보배 어린이집에도 아이들을 위한 알록달록한 그림들이 채워졌다.

더욱이 요즘엔 지자체의 지원을 일체 거부하고 자력으로 마을 꾸미기에 나서고 있다.

“텃밭에 감자를 일궈, 그 수익금으로 페인트를 사고 있어요. 아무래도 재원을 직접 마련하는게 2년전 시작된 벽화그리기의 취지에 더 부합하지 않겠어요?” 문화2동 새마을회 김용만 회장은 “물론 지원을 받으면 좋지만, 영수증 처리가 어려워서…”라며 멋쩍게 웃었다.

이들은 앞으로 충남기계공고까지 벽화를 확장시킬 계획이다. 김 회장은 “충남기계공고에는 학교 성격에 맞게 산업화의 발전과정을 그릴 예정”이라며 “조금은 힘들 수 있지만 이 일대 전체를 문화가 가득한 골목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김영준 기자 kyj85@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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