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관경제, 고조선 역사·문화 핵심 헤아리는 결정적이고 중대한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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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관경제, 고조선 역사·문화 핵심 헤아리는 결정적이고 중대한 열쇠
  • 충청투데이
  • 승인 2015년 09월 01일 19시 46분
  • 지면게재일 2015년 09월 02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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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획]안경전의 9000년 한민족사 이야기17
-건국부터 몰락까지 삼한관경제를 국가 경영의 골격으로 유지했습니까.

단군조선을 이해하려면 이 삼한관경제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이 제도는 단군조선뿐 아니라 동북아 이웃 민족에도 전수됐습니다. 가령 북방 흉노족의 통치체제 역시 으뜸 통치자라 할 수 있는 대선우(大單于)와 그를 보좌하는 좌현왕, 우현왕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또 중국 심양에 있는 청나라 궁궐을 보면, 중앙에 태조 누루하치가 집정하던 대정전(大政殿), 좌우에 그를 보좌하던 좌익(左翼)왕과 우익(右翼)왕의 누각이 있습니다. 이 또한 단군조선의 삼한관경제에 그 연원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삼한관경제가 잘 유지될 때 단군조선은 융성했습니다. 반면 삼한관경제가 흔들리고 무너지면서 단군조선 역시 몰락하게 됐습니다. 나라가 삼한관경제의 흥망성쇠와 그 운명을 같이 한 것입니다.

단군조선 중엽 무력으로 정권을 잡은 제22세 색불루단군(BCE 1285년)이 수도를 하얼빈 아사달에서 백악산 아사달로 이전합니다. 이때 단군조선의 삼한(관경제) 체제를 삼조선 체제로 바꿉니다. 그러면서 삼한관경제가 크게 흔들리게 됩니다. 그러다 제44세 구물단군에 이르러 이 체제가 무너집니다. 원래 대단군만 갖고 있던 병권(兵權)을 부단군들도 동등하게 가지게 되면서 삼조선이 독립된 세 나라로 분리됐기(BCE 425년) 때문입니다. 『삼국유사』에서는 단 한 분의 단군왕검이 무려 1,908세를 살았다고 합니다. 이는 잘못 서술된 것으로 사실은 초대 단군왕검부터 제43세 물리단군 때까지 나라를 다스린 1908년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제1세 단군에서 제21세까지 1048년, 제22세부터 제43세 때까지 860년을 합해 1908년이 됩니다. 그로부터 188년 후 제47세 고열가단군을 끝으로 단군조선이 역사의 막을 내립니다. 물론 『환단고기』는 단군조선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망하게 됐으며 또 이후 그 정통성을 이은 북부여와 고구려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도 소상이 전해줍니다. 역사의 진실이 이러한데도 이 땅의 역사 교과서는 하나같이 초대 단군인 단군왕검, 단군조선 말기 번조선의 준왕, 그리고 준왕을 쫓아낸 위만, 이 세 사람만 단군조선의 왕인 것처럼 서술하고 있으니 통탄할 노릇입니다.

-북삼한 시절, 그러니까 대륙 시절 단군조선의 영역은 어떠했습니까.

『환단고기』의 기록을 토대로 알 수 있습니다. 단군조선의 영역이 가장 넓었을 때는 만주와 한반도를 중심으로 북으로는 러시아의 바이칼호(湖), 서로는 중국의 섬서성, 남으로는 산동성을 포함해 양자강 유역까지 뻗어 있었습니다. 『단군세기』에 보면 초대 단군왕검은 당시 대홍수로 국가 존망의 큰 위기에 처한 중국의 순임금에게 '오행(五行)의 원리로 물을 다스리는 법'을 전해 위기를 벗어나게 합니다. 그러면서 유주(幽州)와 영주(營州)를 단군조선의 영토로 귀속시켰습니다. 유주는 오늘날 중국의 하북성, 영주는 산동성 일대입니다.

역시 『단군세기』에 따르면 제13세 흘달단군은 후일 상나라의 시조가 되는 탕의 간곡한 탄원을 받아들여 하나라의 마지막 걸(桀)왕을 정벌합니다. 그때 낙랑 군사와 합세해 빈(?)과 기(岐)를 공격하고 강역을 더 넓혔습니다. 빈과 기는 현재 중국의 하북성에서 대륙의 서쪽으로 더 들어간 섬서성의 지역들입니다. 또 여기서 낙랑은 배달국 시대 태호복희씨 때부터 있었던 지명으로 당시에는 단군조선의 한 제후국이었습니다. 나중에 삼한에서 삼조선 체제로 바뀌면서 제45세 여루단군 때는 연나라가 단군조선의 국경 지대인 운장(雲障-오늘의 중국 천진 동쪽 지역)을 치고 들어와 이를 차지합니다. 그러나 삼조선은 이내 힘을 합쳐 이를 되찾습니다. 단군조선의 강역이 대륙 깊숙이 뻗어 나갔다는 사실은 고고학의 발굴로도 뒷받침됩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지난 20세기 후반 발굴된 하가점 유적이 그것입니다. 중국의 내몽골 지역 적봉시에 위치한 하가점 유적지에서 예술미가 번뜩이는 비파형 청동검이 나왔습니다. 알려진 것처럼 이는 청동기 문화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유물입니다. 그런데 하가점에서 발견된 청동검이 만주와 한반도에서 발굴된 것과 그 형태가 동일합니다. 이는 하가점 역시 동일한 단군조선의 영역이었음을 알게 하는 증좌입니다. 단군조선은 한마디로 한반도에서 요서 지역 그리고 섬서성 일대까지, 동북아 광역을 아우르던 대제국이었습니다. 〈계속〉

현 주류 강단 사학계가 고조선사를 제대로 밝히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신교 삼신문화의 우주관과 신관에 근거한 삼한관경제에 대한 인식의 부족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