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문의 窓]충북본사 편집국장

‘空腹高心如餓虎(공복고심여아호) 無知放逸似顚猿(무지방일사전원)’

속은 비고 마음만 높으면 주린 호랑이와 같고, 아는 것 없이 놀기만 하면 넘어진 원숭이와 같다는 말이다.

이 게송(불덕을 찬미하고 교리를 서술한 시구)은 야운 스님이 쓴 '자경문'에 나오는 것으로, 인간은 무엇보다 교만심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마음 속의 교만을 꺾지 않고는 누구도 수행을 제대로 했다고 말할 수 없다는 의미일 게다.

지난해 말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에 이어, 최근엔 강신호 동아쏘시오그룹(옛 동아제약) 회장의 4남인 강정석 사장의 막장 갑질 행태가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그는 서울의 한 병원에서 주차위반 경고장을 붙인 것에 격노해 주차관리요원의 노트북을 박살내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여기에 롯데의 그룹 경영권 다툼을 지켜보면서 재벌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결코 곱지 않다.

요즘 극장가에서도 이런 재벌의 특권 의식, 이른바 '갑질' 행태를 응징하는 내용의 영화 '베테랑'이 상영되면서 국민적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문제는 영화 속에서나 벌어져야 할 이 같은 일들이 현실에서도 끊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갑질은 흔히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甲)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乙)에게 하는 부당 행위를 통칭하는 개념이다. 갑질은 통상적으로 ‘내가 누군지 몰라?’라는 거드름부터 시작된다.

최근 국회의원들의 자녀 취업 특혜 논란으로 정치권이 또 다시 갑질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여야가 국민들에게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를 경쟁적으로 약속하고 청년일자리 창출의 중요성을 앞다퉈 외쳐왔던 상황이라 국민들의 분노심도 크다.

비단 정치권의 갑질은 이번에 문제가 된 새누리당 김태원 의원과 새정치민주연합 윤후덕 의원에만 국한되는 일이 아니다. 이들은 ‘재수없게 걸렸다’거나 ‘왜 나만 갖고 그러느냐’고 억울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이 자녀의 취업에까지 마수를 뻗친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 젊은이들의 소박한 희망이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고, 열심히 두드리면 취업할 수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꿈을 송두리째 앗아갈 수 있다는 점에 분노한다. 숱한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도서관과 고시촌을 전전하거나 '알바' 등 임시직에 종사하는 처절한 현실에서 의원 자녀들의 특혜 취업 의혹은 갑질사회의 종결을 보여주는 것 같아 갑갑하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스는 ‘정의로운 국가’란 차등이나 불평등을 정당화할 수 있는 국가라고 정의했다. 이 말의 핵심은 기회의 균등이다.

특권층의 갑질 행태는 이러한 균등한 기회마저 박탈한다는 점에서 책임이 가볍지 않다. 취업 특혜가 사실이라면 해당 의원도, 의원의 요구를 들어준 정부 기관도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 사회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가 통탄스러울 뿐이다.

이솝 우화에는 ‘소의 몸집을 부러워 한 개구리가 그 흉내를 내려다가 배가 터져 죽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특권층이라는 이름으로 그런 교만한 개구리를 쏙 빼닮은 인간들이 활개치고 있으니 답답하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사람은 가마 타는 즐거움만 알지, 가마 메는 괴로움은 알지 못한다(人知坐輿樂 不識肩輿苦)"고 말했다.

이 시대 모든 주체들이 너나없이 역지사지의 정신으로 돌아가길 권면하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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