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당] 조원오 원불교 충북교구장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 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시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시’의 서시(序詩)이다.

최근들어 종교인의 세금 문제가 세간에 회자되고 있다. 정부가 종교인 과세 방안이 포함된 세법 개정안을 내놓으면서 부터다.

헌법 제38조에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납세의 의무를 진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납세의무는 국민의 납세능력을 고려해 공정하고 평등한 과세가 되도록 하여야 한다'고 명시함으로써 조세평등주의와 조세법률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종교인의 세금 문제가 거론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5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으나 아직도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천주교는 1994년부터 근로소득 세율에 따라서 세금을 납부하고 있다.

또 그동안 반대 입장을 보였던 불교와 기독교 일부 단체도 긍정적인 자세를 보이는가 하면 자진 납세에 동참하는 목회자도 있다. 종교인도 이 나라 국민 가운데 한 사람이기 때문에 작은 금액이라도 납세의 의무에 동참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부귀와 권세는 종교인의 몫이 아니다. 종교인의 참다운 가치는 청빈과 고독, 봉사에 있다. 세존께서 왕세자의 자리를 버리고 6년간 설산에서 고행을 하셨기에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이 되셨다.

예수님께서도 40일간 광야에서 금식기도를 하셨기에 하나님의 독생자가 되셨다.

요즘 세상 사람들이 종교인을 걱정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나눔 국민운동본부 손봉호 대표는 "종교인의 면세는 도덕적 탈세"라고 지적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려 해서는 안 된다.

스님, 목사, 신부, 교무 등 종교인의 호칭은 예사 이름이 아니다. 이 시대를 향도하는 책임을 가진 지도자에게 주어진 값진 이름이다. 그 이름값을 제대로 해야 한다. 신자들이 내는 성금은 정성이 담긴 공금이기 때문에 반드시 공의를 거쳐 소중하게 사용돼야 한다. 여러 사람의 정성이 모아진 공금이 무서운 줄을 알아야 한다. 공중의 재산을 유용하면 그 과보가 더 크기 때문이다.

애국자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각기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나라의 위상을 드높인 사람이 애국자요, 정해진 세금을 잘 내는 사람이 애국자요, 국방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사람이 애국자다.

세금문제 외에 종교인이 내려 놓아야할 짐이 하나 더 있다. 지난해 국세청이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거짓으로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한 102개 단체 가운데 종교단체가 93개로 91%를 차지하고 있다.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종교인으로 사는 모습은 서로 달라도 일생을 마치고 돌아갈 때 바람은 서로 비슷하지 않을까. 열반에 들거나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한 점 부끄러움 없는 마음으로 가볍게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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