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문의 窓]충북본사 편집국장

말이 될 수 없는 상황 설정, 매우 자극적인 장면을 이용해 줄거리를 전개해가는 희곡을 흔히 ‘막장드라마’라고 한다. 요즘 배우가 아닌 국회의원이나 재벌들이 주연으로 출연하는 막장드라마가 추레한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새누리당 심학봉 의원의 성폭행 논란은 막장드라마보다 더 막장이다. 심 의원은 지난달 13일 오전 대구의 한 호텔로 40대 보험설계사를 불러내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성폭행을 당했다던 이 여성은 경찰의 추가 조사에서 "성관계를 한 것은 맞지만 온 힘을 다해 성폭행을 피하려는 노력을 하지는 않았다"며 진술을 일부 번복한 것으로 전해졌다. 더구나 이 여성은 진술을 번복하기 전날 심 의원과 다시 만나 노래방까지 간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의원들의 끊이지 않는 성추문의 진실이 무엇인지는 당사자들만 알 수 있다. 그러나 진실을 떠나 현역 의원이 이런 추문에 휩싸인 것 자체가 개탄스럽다. 사건이 있던 날은 평일이었고, 그날은 심 의원이 소속된 국회에서 상임위가 열린 날이다. 그는 파문이 확산되자 새누리당을 떠나긴 했지만, 탈당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집권당의 국회의원이 국회 상임위 회의도 빠진 채 지방의 한 호텔에서 낯 뜨거운 막장 멜로드라마를 찍었다는 것만으로도 의원직을 사퇴해야 마땅한 패륜(悖倫)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박기춘 의원의 억대 금품 비리도 사법 단죄 수순에 들어가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는 박 의원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2013년부터 분양대행업자로부터 2억 원 안팎의 현금과 고가 시계, 명품 가방 등을 받은 혐의를 조사했다. 박 의원은 검찰에 출석하면서 "구차하게 변명하지 않겠다"며 피의사실을 일부 시인하면서도 "대가성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그의 변명은 정치인의 여느 검은돈 사건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구차하게 들릴 뿐이다.

롯데그룹의 경영권 분쟁도 막장드라마의 끝판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긴 마찬가지다. 비밀스럽고 수상한 그룹 지배구조와 족벌들의 '손가락 경영', 롯데의 국적 정체성 논란까지 겹치면서 '반(反)롯데' 정서가 사회 전반에 급속히 확산하고 있다. 피보다 돈을 선택한 그들의 골육상쟁(骨肉相爭)은 국민들을 폭염보다 더 짜증나게 만들고 있다. 이참에 황제경영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재벌을 해체해야 한다는 원성도 크다.

재벌가의 역겨운 막장 행태는 이 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 땅콩회항 사건으로 구속기소됐던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구치소에 수감된 시기에 '편의를 봐 주겠다'고 접근한 브로커에게 대가를 지급한 정황이 드러났다. 조 전 부사장에게 편의 제공을 제안한 브로커는 지난 5월 항소심에서 조 전 부사장이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나자 한진렌터카의 용역 사업을 수주한 사실이 적발됐다. ‘슈퍼갑질’로 구속된 사람을 구치소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런 거래까지 했다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조 전 부사장은 구치소에 있던 42일 동안 일반 면회를 124차례나 했다고 한다. 하루 평균 3번꼴이다. 재벌 일가의 도넘는 행태가 연이어 터지면서 그동안 관행적으로 이뤄졌던 기업인 특별사면이 정당하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불가(佛家)나 도가(道家)에서는 '흔적'을 남기는 걸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게 잘 가는 것'이라는 뜻의 '선행무철적(善行無轍迹)'을 권려했다.

성철 스님 역시, '모든 건 이 순간이 지나고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뿐'이라며 어떤 흔적도 남기려 애쓰지 말라고 설법했다.

아무도 밟지 않은 흰 눈밭에 자국을 남기는 건 ‘개’가 아니라 ‘사람’이어야 한다. 이 시대 모든 주체들이 초심으로 돌아가길 권면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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