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희조 새누리당 대전시당 사무처장

"아빠, 인공암벽 타러가자."

사춘기를 겪고 있는 중학교 1학년 딸아이가 다짜고짜 명령 아닌 명령을 내린다.

아빠는 아내의 눈총을 받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바로 답을 해준다. 요구를 거절하면 최소한 몇시간은 부녀지간에 냉전 상태를 견뎌내야 하기 때문이다. 가까운 곳에 인공암벽 체험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것은 나중 일이다. 아들 녀석이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딸아이에게 바로 지금 필요한게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감각기관이 하나 더 생겼다.

딸아이의 사춘기는 가족, 특히 아빠와 같이 겪는 것 같다. 아마 대한민국의 모든 딸바보 아빠가 감내해야할 숙명으로 여겨진다. 초등학교와는 차원이 다른 교육과정에 적응하면서 사교육 대열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힘든 길을 걷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면 안쓰럽기 그지 없다. 사춘기와 겹쳐 있는 아이들이 앞으로 짊어져야할 삶의 무게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여기서 누구나 겪고 다른 아이들과 별반 상황이 다를바 없는데 너무 유난을 떤다고 할 수도 있고, 부녀간에 대화의 벽을 쌓고 지내는 경우도 있는데 행복한 고민을 한다고 코웃음을 칠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 모 방송에 아빠와 성장한 딸과의 고민을 다양한 시각에서 새롭게 풀어 나가는 프로그램을 관심 있게 시청하고 있다. 잘나가는 연예인 아빠와 평범한 가정의 딸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평소 부녀지간에 가슴속 깊이 숨겨왔던 감정들을 자연스럽게 풀어나가는 장면을 보면서 사춘기 딸아이를 둔 필자에게 가정교육의 자료로 삼을 만한 내용들이 제법 등장해서다. 어느 딸의 오래 묵은 감정을 토해 내면서 그 아빠가 후회와 공감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카타르시스의 절정으로 기억된다. 그 딸이 성장하면서 때로는 자기 감정을 용암처럼 분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기만의 공간속 깊은 곳에 꼭꼭 숨겨 놓고 좀처럼 드러내지 않을 때도 있어 감정적으로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춘기병을 앓고 있는 딸에게 좋은 약은 무엇일까’하는 고민은 머릿속에서 풀리지 않은 숙제로 뱅뱅 돌고 있던 차에 이 프로그램은 좋은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바로 끊임없는 대화와 신뢰 쌓기 그리고 공감하기가 아닐까 한다.

필자는 그동안 아이들의 양육과 교육은 순전히 엄마의 영역이라는 캐캐묵은 사고와 여러 현실적 환경으로 아이들과는 정서적으로 가족 아닌 가족으로 살아 왔다. 그러면서 늘 주변으로부터 '나쁜 아빠'라는 오명을 들어야만 했다. 딸아이가 중학생으로 입학 후에야 아빠로서 제자리를 찾아가려는 노력은 시작되었고 '딸바보' 입문으로 그 해답을 구했다. 갑작스럽고 어설픈 아빠 노릇에 가끔 징그럽다며 반발을 불러오기도 했지만 꾸준한 노력으로 어느 정도 성과는 있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연예인과 학교 절친이 누군지에 대해 더이상 특별한 대화의 주제가 아니다. 그러나 진정한 딸바보로 살아가기 위한 험난한 여정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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