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세평]장종태 대전 서구청장

제나라의 왕 양공의 폭정이 계속되자 생명의 위협을 느낀 왕의 두 동생 규와 소백이 각자 이웃나라인 노나라와 거나라로 도망 간 일이 있다. 하지만 얼마 후 양공이 시해를 당해 도망갔던 두 왕자 중 먼저 귀국하는 사람이 왕좌를 차지하는 상황이 됐다.

누가 먼저 도착하느냐에 따라 왕이 결정되는 상황에서 왕자 규를 모시던 관중은 소백의 귀국길을 늦추기 위해 홀로 소백에게 활을 쐈다. 하지만 화살이 허리띠에 맞는 바람에 소백이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게 되고, 결국 왕위에 올라 환공이 됐다.

재미난 점은 왕이 된 환공이 관중을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후에 관중의 능력을 높이 사 재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한때 적이었지만 과거보다는 미래를 바라보는 제환공의 능력과 포용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결국 관중의 탁월한 능력은 환공을 춘추시대의 천하의 패자(覇者)가 되게 했다.

춘추시대 진(晉)나라 기황양은 자신이 모시던 평공이 현령을 추천하라고 하자, 자신의 원수인 ‘해호’라는 자를 추천했다. 평공이 놀라 “해호는 공의 원수가 아니오?”라고 묻자, 기황양은 “현령의 적임자를 물으셨지, 제 원수가 누구냐고 묻지 않으셨습니다”고 답했다. 평공은 해호를 현령으로 삼았고 그 고을은 어느 고을보다 살기 좋은 곳이 됐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오래 지나지 않아 평공이 기황양을 다시 불러 어사를 추천하라 하자 기황향은 그의 아들 ‘기오’를 추천한다. 평공이 “기오는 공의 자식이 아니오?”라고 하자 그는 이번에도 “왕께서 어사를 추천하라 하셨지, 기오가 신의 자식이냐고 묻지 않으셨습니다” 라고 답했다. 그 후 어사가 된 기오는 공정한 법집행으로 백성의 칭송을 받았다.

‘인사는 만사’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인사는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라는 뜻이다. 필자는 오늘 2700년전 고사를 보며 인사의 원칙과 자세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자신을 죽이려고 활을 쏜 자를 살려두는 것조차 쉽지 않았을 텐데, 재상의 자리를 맡긴 환공의 안목과 아량은 기관이나 단체, 국가의 수장이라면 배워야할 덕목이고,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인재를 추천한 포숙이나 인재천거에 원수와 자식이라는 사적 감정을 배제한 기황양의 모습은 조직의 참모들이 갖추어야 할 자세일 것이다.

특히 공직사회에서는 이러한 사적인 이해관계를 떠나 자치단체나 국가의 진정한 주인인 국민을 섬기기 위해 사적인 욕심을 버리고 국가와 지역사회의 공익을 위한 자세가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공직사회에서 인사가 논공행상의 전리품이 된다면 그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고, 그 사회는 불신으로 가득 차고 온갖 비리와 분열로 살기 힘든 사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성인군자가 아닌 다음에야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공평무사를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필자는 35년간 공직자로 근무하며 인사실무를 담당했던 경험과, 민선5기 낙선 후 배움의 시간을 통해 민선시대에는 공무원이 바로 서야 주민들이 행복해지고, 국가나 자치단체가 건강해 진다는 소신을 갖게 됐다.

지금 서구는 튼튼하고 강한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만드는 행복한 서구의 100년 미래를 여는 첫 단추이며 초석은 바로 인사다.

그래서 필자는 인사를 할 때면 대상자가 전에 어떤 일을 했는가 보다 앞으로 어떻게 일 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고 있다. 민선 6기가 출범한지 1년, 오늘도 나는 조용히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2700년전 고전을 다시한번 마음에 새겨본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