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조일현 사진작가

산속 삶을 정리하고 도심으로 나오고서부터 삶이 나름 분주해졌다. 아침 일찍 일어나 새가 울기도 전에 어둑신한 산협촌을 어슬렁거리며 소요하던 그 즐거움도 아마득한 옛 일이 되었는가 싶다. 스튜디오에 갇힌 신세가 되고 보니 기껏해야 퇴근 후에 무심천 둑방길을 거닐며 생선가시를 닮아 가시다리로도 불리우는 옛 풍물교를 바라보며 뱀처럼 흰 무심천의 푸른 냇물을 바라보는 정도랄까. 느지막이 들어온 가족사진을 촬영하고, 못다 푼 짐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불현 듯 시선을 사로잡히고 말았다. 책들 틈에서 사진 한 장이 떨어졌던 것이다. 사진 속엔 해맑은 웃음을 짓고 있는 노동자가 있었다. 머리끈을 질끈 동여맨 그는 맑게 웃으며 주먹을 들어 노동의 신성함을 외치고 있었다. 1980년대, 이념 논쟁이 뜨거웠던 그 시절, 젊은 아내와 어린 아들·딸을 데리고 시위현장에 나온 사진 속의 가장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내 청춘의 시절을 불러냈다.

80년대 후반, 교정엔 삼월의 봄 햇살이 가득했지만 여기저기 삼삼오오 무리지어 앉은 신입생들의 표정엔 왠지 모를 불안이 가득했다. 그들의 웅성거림은 낮았고 어두웠다. 푸른 싹을 내밀기도 전인 노란 잔디 위에 터져 쏟아지던 최루탄 분말과 진압대와 대치하려고 여기저기 뜯어놓은 보도블록이 합세하여 더욱 참담한 이미지로 남아있는 그해 삼월의 풍경.

그해 철학과에 입학했으나 나는 어리둥절해 있었다. 상아탑이란 말이 좋게 들리지 않을 만큼 진리를 쫒기엔 현실이 크고 무거웠다. 연일 이어지는 이념 논쟁과 시위에 찌들대로 찌든 학생들은 상아탑의 진리를 사유하고 인격을 갖춰나가기엔 벅찼다. 난들 예외였을까. 강의는 아예 뒷전이고, 현장사진만 찍어대며 밤늦게까지 선술집에서 거의 괴성에 가까운 이념논쟁에 휘둘리곤 했다.

오랫동안 닫아 두었던 사진 박스를 여는 순간 오래된 종이 냄새와 시쿰한 정착액이 콧속을 후비어 왔다. 퀴퀴한 내음이 아련한 청춘의 낭만을 부추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낭만의 냄새는 금새 옅어졌다. 다시 무거운 우울이 나를 감쌌다. 그 시절 불운이 비단 상아탑 만이었을까? 시내버스를 타면 내던진 짐짝처럼 무표정하게 앉아있는 시민들을 볼 수 있었다. 퀭한 눈이 어디에 시선을 둘지 몰라 흐릿했고 걸음은 무언가에 쫒기듯했고,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청춘들마저 웃음기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 움큼의 필름이 아득한 그 시절을 증언하고 있다. 우리가 지나 온 시간이 사진 속에 선명히 남아 있다. 한 노동자의 선명한 해맑은 시선이 가 닿은 곳은 어디였을까? 엄혹했던 그 시절은 가고 없다. 분명히 우리는 다른 시간 속에 있다. 하지만 역사는 늘 반복되며 그 시대상은 현존한다. 한 세대가 지났지만 우리들 삶의 조건이 더 나아졌다고 확언할 수 있겠는가. 서른 해 가까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남은 문제가 있다. 여전한 불안이 있다. 심지어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고통들이 대기하고 있다. 오래된 사진을 보는 나를 응시하는 이 새로운 질곡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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