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문의 窓]충북본사 편집국장

“여보, 제 소원이 무엇인지 아세요. 내 소원은 높은 구두 신고, 당신 팔짱을 끼고 걸어보는 것도 아니고, 부자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랍니다. 제 소원은 우리 부부가 다음 세상에 태어날 때 나는 건강한 사람, 당신은 조금 불편한 장애인으로 태어나 다시 부부가 되는 거랍니다.”

장애인인 서른아홉 주부는 비장애인인 남편이 다음 생(生)에는 장애인으로 태어나길 소망했다. 언뜻 생각하면 참으로 고약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자기는 멀쩡하게 태어나고, 남편은 장애를 갖고 태어나길 바라니 행짜가 좋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자신의 손과 발이 되어 평생을 수발해 준 남편의 수고로움을 이생에서는 갚을 수 없었기에 그녀는 내세(來世)를 기약했다. 그러면서 내생(來生)에서는 자신의 육신이 멀쩡해야 장애가 있는 남편에게 이생에서 받은 사랑을 몇 천배 몇 만 배 돌려줄 수 있다고 확신했다.

최근 한 라디오 장애인 프로그램을 통해 전국에 울려 퍼진 그녀의 이야기를 전해듣고 오랫동안 가슴이 저민 것은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에 인색했던 우리 삶의 편린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불량식품 등 이른바 4대 사회악(惡) 척결에 나서고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과 더불어 사회적 약자 보호 및 국민 안전을 최상의 가치로 설정하고, 4대악 근절을 국정 핵심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폭력을 뿌리 뽑고, 먹는 것 갖고 장난치는 못된 놈(?)이 세상에 발붙일 수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야말로 행복한 국가를 만드는 첫 걸음이 아닐 수 없다.

차제에 오토바이와 승용차의 머플러(소음기)를 개조해 지축을 울리며 굉음을 유발하는 폭주족들의 광란까지 박멸시키기를 소망해 본다.

날씨가 무덥다. 하지만 창문을 열고 생활하는 이들에게 귀청을 찢을 듯한 소음을 유발하는 폭주족이야말로 칼 든 흉악범이나 다름없다. 낮이나 밤이나 시도 때도 없이 굉음을 내며 도로를 질주하는 그들을 보면, 대한민국에 과연 '법'이 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미치려면 혼자나 미칠 것이지, 남한테 피해를 주면서까지 소음을 유발하는 이유는 무슨 심보란 말인가.

머플러는 원래 내연기관이나 환기장치로부터 나오는 소음을 줄이기 위한 장치다. 하지만 멀쩡한 머플러를 개조해 일부러 굉음을 내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들에게 '자동차소음관리법'은 있으나마나 한 존재다.

문제는 오토바이뿐만 아니라 승용차, 특히 외제차의 머플러를 개조해 보란 듯이 도로를 질주하는 미치광이들의 광란이다. 무법천지가 따로 없다.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불량식품만이 사라져야 할 범죄는 아니다. 어찌 보면 남의 사생활을 짓밟는 소음유발자도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엄청난 소음을 유발하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는 정신질환자도 바로잡지 못하는 나라에서 어찌 '국민행복'을 운운할 수 있단 말인가. 더이상 도로를 그들의 미친 질주를 위해 내어줄 수 없다.

이러한 비정상의 사회양태는 '오불관언(吾不關焉)'식 처방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경찰의 미지근한 단속만으로도 한계가 있다. 성폭행범 등에게 전자발찌를 채우듯, 광란의 질주를 벌이는 철없는 그들의 발목에도 족쇄를 채워야 할 판이다.

이제라도 대한민국의 법치를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 폭주는 그들에겐 스릴일지 모르지만, 일반 대중에겐 위험천만한 반사회적인 행위다. 법질서를 우롱하고, 선량한 일반 운전자와 보행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명백한 범법행위에 다름 아니다. 그런 놈 때려잡을 입법도 못하면서 국회는 왜 있단 말인가. 미치광이에겐 몽둥이가 약이다. 국민들은 국회선진화법보다 미치광이들의 광란을 막을 수 있는 입법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왜 모른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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