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신의 영화를 구하지 않고 오로지 역사광복에 몸을 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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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신의 영화를 구하지 않고 오로지 역사광복에 몸을 던지다
  • 충청투데이
  • 승인 2015년 07월 21일 19시 54분
  • 지면게재일 2015년 07월 22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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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획]안경전의 9000년 한민족사 이야기⑪
▲ ‘환단고기’를 세상에 알린 한암당 이유립(1907-1986) 선생과 그의 평전인 ‘백년의 여정’. 이암의 후손으로 1948년 초간본을 들고 월남. 단단학회의 6대 회장이 되어 기관지‘커발한’발행. 1976년 국사 찾기협의회를 조직함.
-그렇다면 ‘환단고기’도 그때 일제에 의해 모두 폐기되거나 혹은 이를 따로 간직한 사람이 없어서 잃어버렸을 텐데요.

“처참하게 목숨을 잃은 계연수 선생의 시신을 우리 동포들이 수습할 때 멀리서 이를 지켜보며 울던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때 나이 열네 살, 나중에 우리에게 ‘환단고기’를 전해준 한암당 이유립입니다. 그는 계연수 선생에게서 ‘환단고기’ 원본을 전해 받은 한 유지로부터 나중에 어찌어찌 이를 다시 입수했습니다. 그러고는 광복 후인 1948년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서면서 이 원본을 가슴에 품고 남으로 내려와 대전에 정착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분 또한 그 원본을 잃어버립니다. 이유립 선생은 월남한 뒤 1960년대 초부터 사설 학교를 세우고 후학들을 길러냈습니다. 1980년대에는 대전을 떠나 경기도 의정부의 한 셋집을 얻어 갔습니다. 마침 그 무렵 백내장 때문에 집을 떠날 일이 생겼습니다. 군산의 친척이 운영하는 안과 병원에 가서 수술을 하고 일주일 가량 머물러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실을 모르던 집주인이 이유립 선생이 무단 도망간 것으로 생각하고는 선생이 소장하던 책들을 모두 팔아버렸습니다. 그 귀중한 ‘환단고기’초간본도 이때 다른 책들과 뒤섞여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환단고기’ 초간본은 일찍이 모두 없어진 셈인데 어떻게 그 내용이 온전하게 오늘 우리에게 전해질 수 있었습니까.

“필사본이 있었습니다. 이유립 선생의 한 문하생이 1949년에 몰래 필사한 것을 또 다른 문하생이 갖고 있다가 1979년 스승 몰래 자신의 이름으로 100부를 인쇄합니다. 출판사 이름을 따서 이를 '광오이해사 본(本)'이라고 합니다. 교정도 제대로 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책을 펴냈으니 이유립 선생이 대단히 노여웠겠지요. 여기서 일이 그친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일본에서, 그것도 일본인들 구미에 맞게 내용을 일부 왜곡해서 ‘환단고기’를 출간한 것입니다. 당시 한국에 건너와 있던 노보루(鹿島昇)라는 일본인 변호사가 앞서 인쇄된 광오이해사 본을 입수해서는 이를 일본어로 번역해 출판했습니다. 한민족의 역사가 일본어로 번역되고 그것이 역수입되자 한국 역사학계로서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면서 이유립 선생이 직접 이 필사본을 교정해서 이윽고 1983년 '배달의숙본(本)'이라 해서 100부를 공식 출간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비로소 ‘환단고기’가 대중에게 알려지게 됐습니다.

‘환단고기’를 처음 발간하고 일제의 칼날에 무참히 죽어간 계연수 선생, 『환단고기』의 모든 글을 감수한 이기 선생, 평생 가난 속에도 일신의 영화를 구하지 않고 오로지 역사 광복에 몸을 던지며 ‘환단고기’를 세상에 알린 한암당 이유립, 이런 분들의 고귀한 희생 덕분에 오늘 한민족의 정통 사서 ‘환단고기’가 살아남았습니다.”

-이미 1980년대에 ‘환단고기’가 대중에 알려졌는데 왜 한국사 교과서에는 그 내용이 반영되지 않고 있습니까.

“한국 사학계의 권력을 쥐고 있는 주류 강단사학자들이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환단고기’를 정통 사서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정하기는커녕 한 술 더 떠 이 책이 위서(僞書), 조작된 책이라고 매도합니다. 그러면서 당장 그들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대학의 역사학도 제자들을 비롯해 그들에게서 역사를 배우는 많은 학생들, 그들이 쓴 교재로 역사교과를 가르치는 중고교 교사들, 나아가 역사를 알고자 하는 일반인들까지도 ‘환단고기’는 읽어서는 안 될 위험한 책이라고 윽박지르기 일쑤입니다. 이런 까닭에 이유립 선생이 ‘환단고기’를 세상에 알리고 30여 년이나 지났는데도 ‘환단고기’가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강단사학자들이 왜 그런 행태를 보이겠습니까. 한마디로 그들은 그동안 식민사학에 바탕해 구축해 놓은 자신들의 기득권이 무너질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강단사학자들이 ‘환단고기’위서론을 주장하는 근거는 어떤 것입니까.

“문제는 ‘환단고기’의 내용을 한번이라도 제대로 공부하거나 검증하지 않고 일단 외면하거나 배척부터 한다는 것입니다. 위서론자들 가운데 ‘환단고기’를 단 한 번이라도 깊이 있게 읽어 본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아예 ‘환단고기’라는 책 이름의 뜻조차 제대로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고는 지극히 표피적이고 사소한 것을 트집잡고 문제삼아 공격합니다. 가령 ‘환단고기’에 보면 자유, 평등, 세계만방, 헌법 등 근대사 이후에나 나왔을 법한 술어들이 나옵니다. 위서론자들은 이런 단어들을 거론하면서 ‘환단고기’가 옛 사서가 아니라 100여 년 전 근세에 독립운동과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쓰여진 책이다, 이렇게 주장합니다. 그것은 단적으로 말해 그들의 역사공부가 부족한 탓입니다. 앞의 술어들은 이미 중국의 전국시대 때 그러니까 지금부터 2500년 전후부터 쓰던 것입니다. 평등이라는 말도 일찍이 불경에 나오는 것이고 자유라는 단어도 ‘옥대신영’이라는 유명한 시서집에 나옵니다. 헌법이란 말도 이미 고전에 있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학자는 ‘환단고기”에 나오는 '영고탑'이라는 지명이 청나라 때 생긴 것이기 때문에 이 단어 하나만으로도 ‘환단고기’의 모든 내용을 부정할 수 있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자료를 제대로 찾아보면 이미 청나라 이전 명나라 때부터 영고탑이라는 지명은 쓰여 왔습니다. 또 사실 영고탑이란 것은 고조선 중기 이후 역대 단군들이 소도(蘇塗 신성한 구역)를 설치하고 삼신 상제님께 천제(天祭)를 지낸 곳입니다. 그런 사실을 모르고는, 그저 트집거리가 하나 있으면 그것에 매달려 일단 ‘환단고기’를 몰아붙이고 폄하하려고 합니다. 개탄할 일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