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속 역사이야기] ② 신경직 LH공사 충북본부 부장

10세기 지방호족들의 지지를 받으며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 왕조를 세운 왕건에게 충청도는 없어선 안될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래서인지 충청도에는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과 관련된 역사 속 지명이야기들이 유독 많다.

충남 논산군 부적면 부인리(夫人里)의 지명은 어떤 고귀한 여인과 관련이 있을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의 고려 창업을 예언한 한 무당에게 내려준 일종의 벼슬 이름에서 유래됐다. 고려 태조 왕건은 후백제 견훤과 격전을 앞두고 자신의 진지에서 깜박 잠이 들었다가 서까래 세 개를 짊어지고 깊은 연못으로 들어가 닭들이 요란하게 우는 꿈을 꾸었다. 이 꿈의 내용이 궁금했던 왕건은 인근에 용한 무당을 찾아 꿈이 계시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고, 무당은 이 꿈이 장차 왕건이 임금에 오를 것이라 풀이해 줬다. 실제, 후일 고려를 세운 왕건은 왕위에 오른 뒤 자신을 기쁘게 했던 무당을 찾아 ‘조영부인(窕英夫人)’이라 칭하고, ‘부인당(夫人堂)’을 지워줬다. 이때부터 부인리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또, 인근 논산군 광석면 ‘왕전리(旺田里)’도 태조 왕건이 해몽에 대한 보답의 뜻으로, 이 일대 땅을 무당에게 상으로 줬다 하여 붙여진 ‘왕밭’ 또는 ‘왕전리’란 지명이 유래하고 있다.

청주에서 보은 쪽으로 가는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청주시 상당구 ‘방서동(方西洞)’이 나온다. 이 방서동 일대에 ‘대머리’라는 자연마을이 있다. 지명 자체만으론 이곳이 마치 대머리 지형과 관련이 있는 곳이든지, 아니면 대머리인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어 유래된 지명이 아닌가 해 미소짓게 하는 지명이다. 하지만 이곳 대머리는 실제 대머리와는 무관하다. 이 곳이 ‘대머리’라 불리게 된 것은 청주 한(韓) 씨의 시조인 한란(韓蘭, 853~916)과 왕건과의 인연 때문이다.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과 치열한 패권다툼을 벌이고 있을 때 왕건은 후백제를 치기 위해 청주를 거치게 됐다. 이 때 왕건의 군사와 군마는 오랜 전투로 물과 군량미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이곳의 호족이었던 한란(韓蘭)은 왕건의 군사와 군마에게 우물물을 제공해 갈증을 해소시켜 줬고, 군량미를 제공해 군사들의 사기를 진작시켜 결국에는 후백제와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게 된다. 이에 왕건은 한란에게 삼국통일에 공이 크다 하여 대인(大人)이란 벼슬을 내리고, ‘대마을(大村)’로 불리다 변음돼 ‘대머리’가 됐다는 전설이다. 항간에는 마을 첫머리란 뜻에서 대머리라 불린다는 시각도 있다. 이곳의 행정상 지명인 ‘방서동(方西洞)’은 왕건의 군사들이 갈증을 풀었던 네모난(方) 우물(井)의 서쪽(西)에 위치해 있다 하여 만들어진 지명이다.

그 외에도 왕건에 반대하는 청주의 세력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주둔했다 하여 붙여진 진압(鎭壓)에서 유래된 진천군(鎭川郡), 왕건이 전투에서 패해 도주할 때 지원군을 만나 마음이 편안해 졌다고 해 붙여진 천안시(天安市), 왕건이 후백제의 항복을 받아 하늘이 보호한다는 뜻으로 붙여진 논산군 연산면 천호리(天護里) 등이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면서 생겨난 지명들이다.

이처럼 우리지역 충청도는 고려의 건국에 있어 결정적 역할을 하면서 많은 지명들을 만들어 냈다. 단순한 이야기 거리로 치부하기엔 이 이야기들 속에 담겨진 시대적 상황이 너무나도 그럴듯해 신뢰성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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