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세평] 장종태 대전 서구청장

지난 한 달은 마치 끝을 알 수 없는 긴 긴 터널을 지나는 듯 했다.

처음 언론보도를 통해 ‘메르스’라는 말을 접했을 때는 단지 중동지역에서 발생한 호흡기 질환이라 생각했다. 우리나라에 메르스가 한 번도 들어온 적이 없었고, 중동 이외의 국가에서 문제가 됐던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얼마 뒤인 5월 20일, 우리나라에 메르스 최초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보도가 나올 때까지도 우리나라의 의료진이 상황을 재빠르게 수습할 것이라 믿었다. 전 세계에서 의료관광을 하기 위해 찾아오는 대한민국 아니던가.

하지만 보이지 않는 메르스 바이러스는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직·간접 접촉을 통해 평택을 시작으로 서울과 대전으로 퍼졌고, 관리대상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정부의 초기대응실패와 정보제한 등 대응체계 부실과 맞물려 우리나라는 2003년 사스 대응 모범국에서 단숨에 ‘세계 2위 메르스 발병국’이라는 오명마저 얻고 말았다.

필자가 구청장으로 있는 서구의 4개 병원에서도 메르스 감염 확진자가 발생했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메르스 확산방지를 위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 ‘서구 메르스 종합대책 본부’를 설치하고 보건소를 중심으로 비상근무 태세를 유지하도록 지시했다. 구청 전 직원이 비상근무에 나섰고, 자가 격리자를 모니터링 하는 등 지난 40여 일 동안 단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현재는 메르스가 다소 진정세로 접어들었다는 소식이다. 하지만 메르스가 할퀴고 간 상처는 쉽게 아물 것 같지 않다. 메르스로 인해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을 여실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우리의 보건 당국이 얼마나 신종 전염병에 취약한지 만천하에 드러났고, 막강한 재력과 의료기술로 국내 최고라 믿었던 굴지의 병원조차도 아주 작은 바이러스에 휘청거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학교나 일부 지역사회에서는 확인되지 않은 내용으로 서로를 불신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어린 자녀와 생이별을 하고 환자를 살리기 위해 무더운 여름날 방호복을 입고 구슬땀을 흘리는 의료진과 가족들을 감염자 취급하거나 의료진 자녀의 등교를 막는 등 이른바 ‘메르스 낙인’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새로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바이러스에 노출될 위험을 감수하고 가족과 떨어져 매일같이 사투를 벌였던 의료진, 환자를 살리기 위해 내 일처럼 뛰어들었다가 환자에게 감염된 간호사의 소식은 많은 이들을 숙연하게 했다. 인터넷과 SNS를 통해 퍼져나가던 감염공포나 비방이 잦아들면서 환자와 격리자, 의료진을 격려하고 지원하는 손길이 늘고, 함께 위기를 극복하려는 작은 영웅들의 미담이 곳곳에서 전해져 따뜻한 울림을 줬다.

초기에 메르스 감염자를 더 세심하게 관리하고 대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하지만 이제는 메르스 이후의 대책을 논의할 때다. 메르스 여파로 위축된 경기로 인해 팍팍해진 서민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메르스 이외의 바이러스 공격에도 대비할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수많은 안전사고와 사건들이 똑 닮은 쌍둥이처럼 반복 발생하고 있다. 그때마다 관련 기관은 재발방지를 약속하고, 우리 사회는 경각심을 갖겠노라 다짐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비용과 편의에 밀려 안전은 뒷전이 되고, 우리의 경각심은 무뎌지고 말았다. 이런 후진적인 행태를 버리지 못하는 한 우리 사회엔 이번 메르스 사태보다 더 큰 재앙이 올지도 모른다.

현재 우리 사회는 분명 위기를 겪고 있다. 그러나 이번 위기를 우리 사회의 기초를 다시 세우는 기회로 삼는다면 위기는 결코 위기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사람’이 중심이 되고 ‘사람의 안전’이 우선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이것이 바로 33명의 목숨을 잃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며 메르스가 우리에게 남겨준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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