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안경전의 9000년 한민족사 이야기⑨

또한 환국 이후 고려에 이르기까지 9000년에 걸친 한민족의 역사개척 과정도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환단고기’는 한민족과 인류의 창세역사와 원형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지구촌 유일의 역사서이자 상고시대 한민족의 나라 경영을 기록한 통치법전입니다. 나아가 동서양 모든 종교의 모체이자 인류의 시원종교인 신교(神敎)의 전모를 기록한 종교 경전이기도 합니다.

-흔히 ‘삼국유사’나 ‘삼국사기’를 한민족의 대표적인 역사서로 꼽지 않습니까.

“몇 번이고 거듭 강조하지만 ‘환단고기’만이 9000년 한국사의 진실을 기록한 한민족의 정통 역사서입니다. 강단사학자들이 한국의 대표적 사서라고 말하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한국인의 참된 역사와 문화, 정신세계와 생활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당장 "오환건국 최고(吾桓建國 最古=우리 환족이 세운 나라가 가장 오래되었다)"라는 ‘삼성기’의 첫 문장은 동서양을 통틀어 인류 창세문명을 열어젖힌 주체가 바로 환국, 환족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짧지만 놀랍고 강력한 선언입니다. 그렇게 시작되는 ‘삼성기’를 비롯해 ‘태백일사’까지 다섯 책에는 다른 사서들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한민족과 인류의 태곳적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환단고기’는 오랫동안 잃어버리고 단절됐던 한민족의 국통(國統) 맥을 명확하고 바르게 잡아줍니다. ‘환단고기’를 통해 저 상고시대 환국에서 오늘 대한민국까지 한민족이 아홉 시대를 거쳐 왔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더욱이 ‘환단고기’는 한민족의 고유 신앙이자 인류의 시원 종교이며 원형 문화인 신교(神敎)의 가르침을 전해줍니다. 이와 함께 한민족의 우주사상과 천자(天子)문화, 천문학과 수학과 문자, 국가 경영원리 등 역사문화 전반에 걸친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나아가 중국과 일본의 시원역사, 몽골, 흉노 등 북방민족의 개척사, 심지어 서양 문명의 원형이라는 고대 수메르문명의 기원까지 추적할 단서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환단고기’는 비단 한국인뿐만 아니라 동북아와 세계 온 인류가 읽어야만 하는 역사 교과서라 할 것입니다.

-‘환단고기’가 그처럼 큰 가치를 갖고 있는데 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더 알려져 있습니까.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외에는 한국의 고유 역사서가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고유 역사서는 때로는 전란의 와중에, 때로는 사대주의 사상과 식민사관에 밀려 사라졌습니다. 먼저 한국의 고유 역사서가 송두리째 잿더미로 돼버린 큰 사건이 두 개 있었습니다. 하나는 고구려 보장왕 27년(668년) 당나라 장수 이적이 평양성을 함락한 뒤 고구려의 전적(典籍)을 불태운 것입니다. 책이 너무 많아 놀란 나머지 이를 그대로 두면 후환이 생긴다 하여 불질러버렸습니다. 다른 하나는 후백제의 견훤이 도읍인 완산에 신라와 백제의 고유 사서들을 모아놓았는데 후백제가 망하면서 이것이 모두 소실됩니다. 조선 후기 이만운이란 학자는 이 두 사건을 가리켜 '우리 역사 3천 년 내 2대 재앙'이라 표현했습니다. 또 조정에서 직접 나서 역사책들을 없애버리는 일도 있었습니다. 조선 초기 세조, 예종, 성종 때 민간에 남아있던 고유사서들을 모두 수거했습니다. 특히 예종 1년에는 민간에서 고유사서를 가지고 있는 자는 죽인다는 명까지 내립니다. 중국의 역사관을 맹종한 까닭입니다. 근세에 와서는 일본인들이 한반도에 들어와 또 한 차례 조선의 역사책을 대거 불태웠습니다. 조선총독부가 역사, 문화서적 등 20여만 권을 강제로 수거해 태워버린 것입니다.

이런 와중에 어떻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만 남았을까요? 그것은 이들 책이 집권자들의 입맛에 맞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은 중화 사관을 중시한 사대주의자였습니다. 예를 들면 '고구려는 진나라, 한나라 이후 중국의 한 모퉁이에 있는 소국인데도 상국(上國)인 중국에 대들어서 멸망을 자초했다'고 폄하합니다. 또 한반도 남쪽 귀퉁이의 신라를 한민족사의 중심으로 삼기 위해 대륙을 호령했던 대진(발해)의 역사는 한 줄도 쓰지 않았습니다. 이 같은 사대주의 성향 덕분에 ‘삼국사기’는 살아남았습니다. 고려 충렬왕 때 일연 스님이 쓴 ‘삼국유사’는 우리 역사를 불교의 시각으로 기록했습니다. 따라서 한민족의 시원역사를 알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특히 그 내용은 나중에 일제에 의해 한민족사를 크게 왜곡하는 빌미가 됩니다. 가령 그 내용 가운데 석유환국(昔有桓國)이란 대목이 있습니다. '옛 적에 환국이 있었다.'는 뜻으로 이는 ‘환단고기’의 내용과 같습니다. 그런데 일연 스님은 이 대목에 대해 '위제석(謂帝釋)'이라고 주석을 달았습니다. 환국이 제석신이라는 것입니다. 제석신은 불교에서 불법을 수호하는 신입니다. 이렇게 역사를 변질시키는 바람에 나중에 일제가 한국의 고대사를 통째로 왜곡하게 하는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조선총독부의 식민사학자인 이마니시 류가 '석유환국'을 '석유환인(昔有桓因, 옛 적에 환인이라는 사람이 있었다)'으로 바꾸어 한민족 최초의 나라인 환국을 아예 지워버린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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