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뜨거운 열기로 아스팔트가 일렁거리던 날이었다. 전날 밤, 한 통의 전화로 이루어진 친구와의 갑작스런 만남은 계룡으로의 자유여행이 되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그 친구는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친환경적인 삶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는 열혈 지구사랑 종신회원이다. 내비게이션도 없으며, 창문도 손으로 돌려야 올리고 내릴 수 있는 친구의 구식 소형차를 타고 도로안내판을 예의 주시하며 길을 달렸다. 계룡시에 들어서자 안내판에서 제일 먼저 ‘무상사’라는 글씨를 보았다.

음~ 무상사… 절 이름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우린 곧바로 무상사로 향했다. 무상사 입구 인적없는 정자에 잠시 앉았다.

오직 귓전을 스쳐가는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솔솔 부는 시원한 바람이 눈을 감게 했다… 그 곳에선 오직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뿐이었다.

무상사는 보통 보아오던 절의 모습과는 조금은 달랐다. 분명 한국식 절이긴 한데… 뭐랄까… 한국적이지 않은 한국식 절??? 그런데 조계종이다. 상당히 현대적이며 규모가 컸다. 창건 15년이 되었다는 무상사에는 외국인 수행자들이 많이 계셨다.

절 벽면에 붙여놓은 신문에서 무상사 조실 대봉스님 역시 외국인임을 알 수 있었다.

16개 나라에서 온 30여명의 외국인 수행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한다.

무상사는 고요하고 고요해 보였다.

고요한 무상사를 뒤로 하고 사계고택으로 향했다. 사계 김장생 선생은 율곡이이의 제자 가운데 가장 뛰어난 학자로, 한국 예학의 으뜸인물이다. 예학은 도학과 성리학을 바탕으로 어질고 구체적인 실천규범과 시비의 기준을 마련한 학문이다. 사계 김장생의 대표 제자들로는 김집, 송시열, 송준길, 유계, 이유태, 윤선거 등이 있다. 문을 열면 한 눈에 들어오는 사랑채의 위풍당당함이 무지 맘에 들었다.

높아진 위치에서 오는 사랑채의 위풍당당함이 있긴 해도 단정한 소박함이 더 크게 전해오는 4칸 고택이다. 하지만, 사랑채 대청마루에 앉아서 바라보면 대문을 중심으로 왼쪽 5칸, 오른쪽 5칸, 총 10칸의 방들이 있다. 그리고 왼편으로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사진상만으로도 7칸이나 되는 곳간과 반대방향에 도 그만한 크기의 방들이 있다.

저술과 제자 양성에 힘썼다고는 하지만 방의 수만큼 거느리는 식솔들의 수 또한 만만치 않았음을 짐작케하는 풍경이었다.

부(富)는 시대를 떠난 여유로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안채는 김장생 선생이 세상을 떠나자 애통함으로 자결하여 남편의 뒤를 따랐던 열녀 순천 김 씨 부인이 기거했던 곳이다. 자결의 이유가 시대적인 압박이었던지 정말 애통함 이었던지는 알 수 없지만 생각해보자면 자결이 곧 열녀라는 것 또한 그리 마음에 드는 대목이 아니지만… 조선 중 후기 유교사상에 깊이 물들었던 그 시대가 아니라, 거리와 시간과 행동을 자유로이 사용할수 있는 이 시대에 숨 쉬고 있음이 새삼 감사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여인의 삶에는 아직 고뇌가 깊기만 하다.

들어가면 또다른 별채가 나타나고 들어가면 또다른 별채가 나타나고… 한옥을 찾는 재미 중의 하나가 각기 다른 별채의 구성과 시대적인 흐름을 읽어보는 주택구조에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계획되지 않았던 불시의 여행은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마음 편안한 자유가 있었다.

청송  http://blog.naver.com/sanha2323

(이 글은 7월 4일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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