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문의 창]충북본사 편집국장

풀뿌리 민주주의로 불리는 지방자치가 시행된 지 꼭 20년이 됐다. 강산이 두 번 변하는 세월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게 있다. 바로 양상군자(梁上君子) 뺨치는 일부 단체장이다. 방만한 재정운영으로 세금을 축내고, 주민들의 마음까지 훔치니 하는 말이다. 그들의 도둑질은 분야도 넓고 폐해도 크다.

우리는 지난 5반세기 동안 각종 시행착오를 겪으며 정치인과 단체장을 숱하게 배출했다. 그들 중에는 무명에서 일약 전국적인 스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비상(飛翔)한 이들도 있다. 일부는 감투를 쓰자마자 돈에 눈이 멀어 뇌물을 받거나, 벼슬을 잘못 휘두르다 영어(囹圄)의 몸이 된 수인(囚人)도 있다.

문제는 일부 범부(凡夫)가 당을 잘 타고 출마하거나 바람에 의해, 또는 약한 상대 후보를 만나 당선되고도 마치 제 잘나서 공화국(특정 시·군·구)의 대통령이 된 양 우쭐대고 있다는 점이다. 허나 미관말직(微官末職)의 아픔을 모르니,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하지 못하는 격'이다.

선거 때가 되면 '주민의 머슴이 되겠다'고 머리를 조아린다. 그러나 당선되면 곧바로 주민을 머슴으로 생각한다. 온갖 부정한 방법으로 당선된 탓에 법정을 오가며 세월을 허송하는 이도 있다. 행정에 전념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2010년 동시지방선거에서 선출된 민선5기 자치단체장 244명 중 10%가 넘는 27명이 실형(24명)을 선고받거나 사임해 자격을 상실한 통계가 이를 잘 보여준다.

도둑을 점잖게 이르는 ‘양상군자’라고 부르기는 것도 사치다. 그냥 도적놈이나 다름없다. 당선무효형을 선고받고도 항소, 상고 등 시간벌기로 귀중한 시간까지 훔친다. 돈 되는 것만 훔치는 좀도둑과 다르다. 세금을 축내고 지루한 시간끌기로 단체장의 임기까지 까먹기 일쑤다. ‘막가파’와 다름 아니다. 일반 절도범은 특정인에게만 피해를 입힌다. 하지만, 국고를 축내는 단체장은 온 국민을 피해자로 만든다. 그들에게 양심은 애초부터 없다. 그런 자들이 권좌에 있는 한, 유클리드 기하학의 평행선처럼 온전한 지방자치 실현은 요원할 뿐이다.

인디언의 속담에 "누군가를 평가하려면 먼저 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라"는 말이 있다. 남의 신발을 신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처지에서 본다는 말이다. 양의 머리를 내어놓고 실은 개고기를 파는 양두구육(羊頭狗肉)과 같이 자신의 잇속만 챙기려는 얄팍한 행보가 되풀이되는 한, 그 폐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가혹한 정치와 행정으로 말미암아 백성이 심한 고통을 겪는 도탄지고(塗炭之苦)는 그래서 아프다.

기원 전 399년 70세의 노(老)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법정에서 독배를 마시고 비극적 생애를 마감하면서 "사는 것이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올바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남겼다. 그렇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단체장은 한 번 내뱉은 약속은 꼭 지키는 그런 단체장이다. 진정한 지방자치는 손바닥 뒤집듯 바꿀 수 있는 이여반장(易如反掌)이 아니다. 어제 한 말과 오늘 한 말이 다르고, 어제 한 약속이 오늘은 휴지조각이 되는 상황을 보면서 우리의 후손들이 무엇을 배울 수 있단 말인가.

신의를 잃은 단체장은 주민을 한때 속일 수는 있다. 하지만, 영원히 속이지는 못한다. 그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친 영원한 진리이자 위대한 교훈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사람은 가마 타는 즐거움만 알지, 가마 메는 괴로움은 알지 못한다(人知坐輿樂 不識肩輿苦)"고 말했다. 이 시대 모든 주체들이 역지사지의 정신으로 돌아가길 권면하는 아침이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