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전의 9000년 한민족사 이야기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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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전의 9000년 한민족사 이야기⑦
  • 충청투데이
  • 승인 2015년 06월 23일 20시 16분
  • 지면게재일 2015년 06월 24일 수요일
  •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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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획]한국사가 안고 있는 대명제는 왜곡된 한국사를 바로잡는 것
-기자조선의 경우는 무엇이 문제입니까.

“환단고기는 일찍이 초대 단군왕검이 세운 단군조선(※한국사 교과서에는 고조선)이 2096년간 이어졌다고 전합니다. 그동안 모두 마흔일곱 분의 단군이 대를 이어 나라를 이끌었습니다. 그런데 중국과 일본 역사가들이 한국사 교과서에서 이 단군조선을 싹 지워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중국은 한국사의 시작을 기자조선(설), 일본은 위만조선(설)이라고 말합니다. 식민사학을 이어받은 한국의 강단사학자들이 그것을 그대로 유지하고 가르쳐 왔습니다. 한중일 세 나라 역사가와 학자들의 역사 왜곡과 농간에 우리 한민족은 물론 세계 사람들도 속아왔습니다. 먼저 기자조선은 그것이 등장하게 된 경위를 찬찬히 살펴보면 무엇이 문제인지 금방 드러납니다. 중국의 은나라 말기 세 성인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기자입니다. 3100여 년 전 은나라가 주나라 무왕에게 망하면서 기자가 한반도로 건너옵니다. 사마천 ‘사기’ 중 제후들의 역사를 다룬 ‘세가(世家)’에 이와 관련해 '봉기자어조선(封箕子於朝鮮)'이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주나라 무왕이 뛰어난 인재들 가운데 하나인 기자를 조선의 왕에 봉했다, 그런 기록입니다. 바로 이 대목을 근거로 중국 역사가들은 '조선의 역사는 중국의 제후국인 기자조선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다름 아닌 ‘사기’에 나오는 다른 기록들이, 그것이 거짓말임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사기’를 보면 '기자가 조선 왕으로 책봉됐지만 주나라의 신하가 되지는 않았다'고 쓰여 있습니다. 한 나라의 제후로 봉해진다는 것은 당연히 그를 임명한 사람의 신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 무왕의 책봉을 받고도 기자는 주나라의 신하가 되지 않았다? 이는 완전히 모순되는 내용입니다. 더더욱 선명하게 기자조선(설)이 허구임을 보여주는 것은 '기자를 조선 왕에 봉했다'는 그 대목 자체입니다. 기자를 제후로 봉하면서 조선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 아니고, 엄연히 조선이라는 나라가 이미 있었기 때문에 조선 왕으로 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대목은 이미 3100년 이전부터 단군조선이 존재했다, 그것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것일 뿐입니다.”

-위만조선은 이미 한국사 교과서를 통해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것이 온통 허구라는 말씀은 놀랍습니다. 어떤 내용입니까.

“지난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의 식민사학자들은 조선사 말살 정책에 따라 한민족의 단군조선 역사를 신화시대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러고는 조선의 역사가 '위만조선과 한사군'시대부터 시작됐다, 그렇게 날조했습니다. 그 바람에 서기전 2세기 때 인물인 연나라 사람 위만이 뜬금없이 한국사에 버젓이 등장하게 됐습니다. 위만은 원래 중국 연왕(燕王)인 노관의 부하였습니다. 노관은 한나라의 고조 유방이 나라 개창하는 것을 도운 개국공신입니다. 그러다 서기전 195년 노관이 한고조 유방의 부인인 여태후(呂太后)의 숙청을 피해 흉노 땅으로 도망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상관인 노관이 도망가는 신세가 되자 위만도 곧 상투를 틀고 조선인으로 변장해 당시 단군조선의 서쪽 강역이던 번조선으로 망명했습니다. 당시 번조선을 다스리던 준왕(=기준)은 이런 위만을 불쌍히 여겨 망명을 받아주는 것은 물론 한나라와 단군조선 사이의 국경지대인 상하운장의 수비대장으로 임명했습니다. 그러나 위만은 이 같은 은혜를 저버리고 이듬해 번조선의 도읍인 왕검성을 습격합니다. '한나라가 쳐들어오니 도읍을 방어해야 한다'는 거짓 구실로 군사를 일으킨 것입니다. 불의의 공격을 받은 준왕은 한반도 남쪽, 지금의 전북 땅으로 쫓겨 가고 위만은 왕의 자리를 찬탈합니다. 이렇게 해서 위만정권이 세워졌습니다. 위만조선이라는 나라가 아닙니다. 일개 반역 정권이었습니다. 이 위만정권은 나중에 위만의 손자 우거(右渠)가 한 무제에게 망하는 서기전 108년까지 약 90년간 존속합니다. 문제는 이 같은 일개 반역 정권을 일본이 언필칭 위만조선이다, 격상시키고는 한술 더 떠 위만조선에서 조선역사가 시작됐다고 조작했습니다. 게다가 위만조선의 위치가 본래 번조선이 있던 중국의 요령성 서쪽이 아니라 한반도의 평양 이북이었다, 그렇게 자기들 멋대로 추측하여 정해 버렸습니다. 이처럼 위만조선은 한낱 지방정권에 불과할 뿐 한민족사의 국통과 정통맥을 이어받은 공식 국가도, 역사도 아닙니다. 일본이 날조한 역사가 한국사 교과서에 버젓이 한 대목을 차지하는 어이없는 일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위만조선의 역사가 그처럼 조작된 것이라면, 한나라가 위만조선을 치고 한반도에 한사군(漢四郡)을 설치했다는 교과서 내용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한사군에 관한 내용 또한 일본이 온통 조작한 것입니다. 식민사학은 한 무제가 위만조선을 쳐서 무너뜨리고 한반도 북부에 한사군을 설치해 조선을 식민통치했다, 기술하고 있습니다. 역사기록들을 천착해 보면 그것은 전혀 사실(史實)이 아닙니다. 위만의 손자 우거가 위만정권을 끌고 있을 때 한 무제가 공격해 들어온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1년 넘도록 결판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한 무제는 우거 정권의 내부 사람들을 이간시키는 방법으로 우거를 죽이고 전쟁을 끝냈습니다. '참전했던 한 나라 장수들이 다 처형당하고, 우거를 죽이는 데 공을 세운 번조선의 신하 다섯 명은 중국 산둥성 일대 제후로 임명됐다'는 중국의 기록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위만조선과 한나라 간의 전쟁에 관한 기록은 그것이 전부입니다. 한 무제가 한반도 안에 한사군을 두었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