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문의 창]충북본사 편집국장

요즘 들어 ‘신문의 위기’라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통해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 종이신문의 설 자리가 갈수록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위기감의 발로(發露)다.

하지만 독자들의 엄중한 질책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일성(一聲)을 고한다. 아무리 매체가 범람해도 신문의 존재감은 분명하다고 말이다. 신문은 일제의 총칼 앞에서도, 망국(亡國)의 국호 아래에서도 살아있었다. 엄혹한 무단통치의 손아귀에서도 바른 말을 했고, 힘을 가진 자가 재갈(마함·馬銜)을 물리려 해도 결코 절망하지 않았다.

민초들의 피와 땀이 엉긴 귀중한 세금이 축 나고, 민초들의 허리가 휘든 말든 자신들의 양명(揚名)을 위해 도적질하는 위정자들의 험상궂은 몰골을 파헤치는 몫도 신문의 역할이었다. 정책을 비판하고 권력을 감시하는 것도 신문의 소임이었고, 민주주의의 퇴보를 막기 위한 것도 신문의 사명이었다. 그 후 방송이 생겨나면서 언론의 이러한 책임은 계속됐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부정과 비리를 감시하는 파수꾼의 역할 대신, 불의에 눈감고 부조리에 귀먹은 파수견이 됐다면 신문은 살아남지 않았을 것이다.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는 토머스 제퍼슨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말이다.

충청투데이가 창간 25주년을 맞았다. ‘늘 깨어있는 신문, 열려 있는 신문’으로 충청인과 함께 해온 세월이기에 의미가 남다르다. 충북 신문 따로, 대전·충남 신문 따로, 양분된 충청권을 하나로 묶기 위해 2005년 1월 2일 대전매일신문에서 충청투데이로 제호를 바꾸고 ‘충청인의 뜻을 대변하는 신문’을 만들기 위해 일신(一身)의 안위를 던져 넣고 일한지도 10년이 훌쩍 넘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편견과 아집에 사로잡혀 제 눈의 ‘들보’는 못보고 남의 눈에 있는 ‘티끌’만 탓하는 이들이 있다. 입으로는 ‘글로벌’을 외치면서도 아직도 대전 신문이니, 충북 신문이니 편 가르기를 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이러한 멍첨지가 똬리를 트는 한, 신문의 위기는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우리 민족은 그동안 좌우 이념대립, 6·25비극, 가난의 질곡, 독재의 신산(辛酸)을 넘어 오늘에 이르렀다. 이는 흉포한 권력에 굽실거리는 문약(文弱)이 되지 않도록 이끈 민중의 힘이다. 난마처럼 얽혀있는 모리배들의 부정과 부패를 만천하에 알릴 수 있었던 것도 펜의 힘을 믿은 민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더 이상 민심의 총기(聰氣)를 흐리고, 텃세를 부리는 것이 무소불위의 권력인 양, 오만을 부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칼’을 만지니 ‘칼’인 줄 안다. 하지만, 터럭같이 가벼운 신문 몇쪽 만들면서 언제까지 텃세를 운운하고 살지, 그 세(勢)가 거칠고 살차다.

대곡(大哭)한다. 힘없는 개가 잘 짖는다고 했다. 유가부수 수만 부를 발행하는 여타 지역으로 안목을 넓히자. 아무도 밟지 않는 흰 눈밭에 자국을 남기는 건 '개'가 아니라 '사람'이어야 한다.

언론은 '언치논도(言治論道)'를 줄인 말이다. 바람직한 치도(治道)인 데, 무너진 길을 고쳐 닦는 '길닦이'를 이른다. 세상엔 빛과 어둠이 공존한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은 법이다. 그렇다고 그림자가 되지 않기 위해 빛만 따라갈 수는 없다. 그늘에 숨어 적당히 운신할 수도 없다. 가장 두려운 건 문장과 시각이 늙바탕에 접어든 편협한 이들이 아니라, 진실을 믿는 독자다.

다시 '칼'을 간다. 매체의 홍수 속에서도 가장 정확하고 가장 가까운 우리지역의 소식을 발 빠르게 전달하는 지방지의 본령을 다하기 위해서다. 그것만이 오롯이 부를 수 있는 펜의 창가(唱歌)다. 염치없지만 독자여러분의 변함없는 성원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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