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헌원을 사로잡은 치우천황은 동방 무신의 시조로 숭상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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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헌원을 사로잡은 치우천황은 동방 무신의 시조로 숭상받고 있다
  • 충청투데이
  • 승인 2015년 06월 16일 19시 59분
  • 지면게재일 2015년 06월 17일 수요일
  •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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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획]안경전의 9000년 한민족사 이야기⑥
▲ 중국 호남성(湖南省) 화원현(花垣縣) 묘족(苗族) 자치주에 있는 치우 동상.
-중국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중국은 오래 전부터 하·상·주 세 나라를 나라의 기원으로 여겨왔습니다. 하나라 상나라 주나라 이전에는 요임금의 당나라, 순임금의 우나라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요우순이라 합니다. 그리고 그보다 앞선 역사는 중국인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해 '전설의 왕조'라고만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다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에 걸쳐, 4200여 년 전의 하나라 시대 유적이 드러나면서 전설로만 여기던 왕조가 실재했다, 그렇게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사마천의 ‘사기’ 첫 페이지에 나오는 중국 역사의 시조, 한족의 조상이라는 4700년 전 황제 헌원도 실재한 역사 인물이다, 그렇게 간주합니다. 그런데 역시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에 중국 요령성의 우하량과 동산취에서 엄청난 유적과 유물이 대거 발굴됩니다. 무려 5500년 전 신석기 유적들인데 분명히 그곳에 국가가 있었다, 그런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홍산유적, 홍산문화입니다. 문제는 황하문명보다 훨씬 더 이전 것인 이 신석기 유적이 중화문명권 바깥인 만리장성 이북에서 나온 겁니다. 그러니 중국인들의 역사, 중국인들의 문화가 아닌 것입니다. 이 사실에 중국이 충격을 받았고 거기서 동북공정(東北工程)이란 것이 나오게 됩니다. 2002년부터 본격화된 동북공정은 한마디로 한민족의 고대사를 중국 역사로 바꿔치려는 국가 프로젝트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전개하면서 중국 정부는 홍산문화를 들먹이면서 '우리 역사는 5000년을 훨씬 넘어 1만 년 이전부터 시작됐다'고 주장합니다.”

-한민족사의 기원 혹은 한민족의 고대사와 관련해서는 그 왜곡의 정도가 어떻습니까.

“중국과 일본은 한민족의 고대사를 일부 왜곡하거나 날조하는 정도가 아니라 모두 7000년이나 되는 환국-배달-단군조선의 방대한 역사를 아예 송두리째 지워버리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우리 한민족의 고대사가 도대체 어떻게 몽땅 지워졌는지, 나아가 과연 저들이 왜곡한 역사 대목은 어떤 것들인지 조목조목 말하면 몇 권 책으로도 모자랄 것입니다. 오늘은 먼저 저 2002년 월드컵 이후 우리 국민에게 아주 친숙해진 치우천황(蚩尤天皇) 역사의 진실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한국사 교과서에 버젓이 실려 있는 이른바 기자조선(箕子朝鮮)과 위만조선(衛滿朝鮮), 나아가 한나라가 위만조선을 치고 사군(四郡)을 두었다는 이른바 한사군 이야기의 허구성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치우천황 역사의 진실이란 어떤 것입니까.

“한국과 중국 고대사를 날조한 첫 기록은 2100년 전 한나라 때 사관인 사마천의 ‘사기’입니다. 그는 한 무제가 한반도에 쳐들어갔다가 전쟁에 참패하고 돌아온 시기에 이 책을 썼습니다. 그 첫머리는 ‘오제본기’편으로 이는 중국인들이 개국 시조로 받드는 황제 헌원(黃帝 軒轅)의 이야기입니다. 사마천은 여기서 헌원과 치우 사이에 벌어진 전쟁인 탁록대전에 대해 '치우가 난을 일으켜 헌원의 명을 듣지 않자 이에 헌원은 제후들을 소집해 탁록의 들에서 치우와 싸워 드디어 치우를 사로잡아 죽였다'고 기록했습니다. 핵심은 금살치우(禽殺蚩尤) 곧 '헌원이 치우를 사로잡아 죽였다'는 네 글자입니다. 그런데 ‘사기’를 읽다 보면 '치우가 가장 포악해 천하에 아무도 그를 정벌할 수가 없었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치우가 누구에게든 패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 ‘사기’의 주석서인 ‘사기집해’에 보면 '치우는 옛 천자(天子)'라고 되어 있습니다. 천하의 지배자는 헌원이 아니라 치우였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환단고기’는 보다 상세하게 치우가 동방 배달국의 제14세 자오지 환웅이라고 밝혀주고 있습니다. ‘환단고기’는 나아가 더 놀라운 진실을 전합니다. 헌원이 이긴 게 아니라 치우천황이 헌원을 이깁니다. '서방(西方)족의 우두머리였던 헌원이 치우천황을 꺾고 대신 천자가 되려는 욕심으로 군사를 일으키자, 치우천황이 10년 전쟁 끝에 탁록대전에서 그의 무릎을 꿇리고 제후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사마천이 서술한 '금살치우'라는 대목은 역사적 사실을 거꾸로 써놓은 것입니다.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치우천황은 일찍이 헌원에게 중국 문화와 문명의 원형을 전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사마천은 ‘사기’에서 중국 문명사의 첫 페이지를 뒤집어버린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중국 역사의 시조라는 헌원을 천자(天子)로 내세워 동북아의 패권자요 주도권자로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중국이 예부터 오늘까지 내내 동북아의 중심국이었다, 그런 억지 역사를 내세우기 위해 '금살치우'라는 조작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