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이근규 제천시장

어느 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가 주변의 봉우리들을 내려다보며 큰소리로 교만을 떨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높다!”

그러자 다른 산들이 모두 고개를 조아리며 합창하듯 말했다.

“예, 그러합니다.”

그때 어디선가 조용히 나지막한 음성이 들려왔다.

“어이, 에베레스트군, 잘 보게나. 자네는 내 아래에 있지 않은가.”

이 무슨 황당한 말인가? 깜짝 놀란 에베레스트가 이리 저리 돌아보니, 자신을 뒤덮고 있는 땅거죽이었다.

‘땅 속에 산이 있다’는 지중유산(地中有山)의 경지다. 이렇듯 ‘높은 산마저도 땅거죽 아래에 있다’는 것은 겸손함의 극치다. 그래서 세상에서 겸허함을 당할 재간이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땅을 뚫고 우뚝 선 나무는 과일이 많이 달리면, 그 가지를 땅을 향해 늘어뜨리고 누군가 따갈 수 있도록 숙인다. 이처럼 풍요로운 때가 되면, 고개를 숙이고 겸손하게 ‘나눔’을 준비하는 것도 역시 자연의 섭리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참 가소로운 일이 많다. 지위가 높고 낮음, 학력과 재산 등이 마치 사람에 대한 평가기준이 되는 양 허세에 젖어 사는 경우가 많다. 계층 간의 갈등이나 많은 사회문제들로 인한 절망감도 사실은 이런 허상에서 생기는 일이 아닌가.

그러나 ‘고개 숙이고 발밑을 살피라’는 조고각하(照顧脚下)를 실천해 보라.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평범하고 가슴에 와 닿는 이 말은 우리 민족에게서는 아주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민본사상(民本思想)이다. 우리 사는 세상은 권력자나 세도가가 아니라 묵묵히 성실하게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주인이라는 것이다.

지난 해 취임식을 통해 제천시는 민선 6기를 ‘시민시장시대’라 선언했다. 작은 이야기지만, 제천시청 공무원조직도에 보면, ‘제천시민’이 ‘제천시장’ 위에 놓여있고, 오른쪽 위에 ‘시민이 시장입니다’라고 하고 있다.

'시민시장'이란 시민이 주인이고 시민이 시장이라는 말로써, 우리들 속에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던 갈망이다. ‘시민시장’이란 자신의 자리를 성실하게 지켜가면서 온전히 선하고 정직하게 살아가고 있는 시민들의 삶을 귀하게 여기는 인본사상(人本思想)이다.

또한 ‘시민시장시대’는 ‘사람이 우선’이라는 사람중심의 가치를 지키며, 그동안 국가의 권력자나 특권층들이 독점하고 있던 기득권을 내려놓고, 시민을 주인으로 섬기며 ‘더불어 함께’ 살아가자는 우리들의 공감이고, 합의다.

돌아보면, 민주화운동을 거쳐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만든 우리 헌법 1조 2항에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한마디로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점에서, 제천시 민선 6기호가 선언하고 있는 ‘시민시장시대’는, 우리가 만든 헌법정신에 충실하고자 하는 정치적 결단이라고 할 수 있다.

‘지산겸’은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는 이도 결국은 시민의 아래에 있는 것이라는 철학적 교훈이다. 정치인, 공직자들은 겸허한 자세로 국가의 주인인 국민을 섬기라는 것이다. 시장 취임 1주년을 앞두고, 주역(周易) 15번째 괘인 ‘지산겸(地山謙)’이 우리에게 넌지시 주는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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