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문의 창]충북본사 편집국장

속담에 '동냥은 못 줄망정 쪽박은 깨지 마라'는 말이 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외려 방해가 되지 말라는 뜻이다. 국민의 건강을 책임져야 할 보건당국의 부실한 방역정책이 꼭 그 모양새다.

자칫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에 감염된 환자와 가족들이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이라도 청구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 메르스(MERS)로 사망한 환자의 유족 등이 손해배상을 청구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국가배상법 2조 1항은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나 과실로 법령을 위반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국가가 대신 손해를 배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사스(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 감염자가 “부실한 방역 대응에 책임을 지라”며 정부를 상대로 5000억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한 사례가 있다.

당장 정부의 안이한 대응으로 메르스 공포가 확산되면서 자치단체에도 불똥이 튀고 있다. 이른바 '요우커'로 불리는 돈 되는 중국인 관광객을 잡기 위해 잰걸음을 내딛던 충북도는 된서리를 맞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메르스에 감염된 환자가 중국으로 출국하면서 '메르스 밀수출국'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쓰게 됐으니, 요우커의 충북 방문도 크게 줄어들 것으로 우려된다. 체류형 관광상품 개발에 집중해 온 충북도로서는 경제적인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게 됐다.

청주국제공항 활성화에도 찬물을 끼얹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2012년 청주공항으로 입국한 중국인 관광객이 3만 2000여명에서 2013년 6만 7000여명, 지난해 18만여 명으로 급증한터라 요우커의 발길이 줄어들게 되면 충북경제도 그만큼 피해를 입게 될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 관광객 가운데 유독 중국인들을 지칭해 요우커(游客)라고 구분하는 까닭은 그 숫자가 엄청나고 그들의 씀씀이가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방문한 중국인은 612만명, 이들이 쓰고 간 돈은 무려 7조 6772억원으로 전체 외국인 관광객 지출의 절반에 이른다.

요우커의 방문에 힘입어 청주국제공항은 1997년 4월 개항이후 17년 만에 ‘이용객 160만명 돌파’라는 사상 최대기록을 기록했다. 한때 ‘동네공항'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이기도 했지만, 요우커의 방문이 급증하면서 중부권 허브공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전기를 맞고 있던 셈이다. 그러기에 어설픈 정부의 방역대책은 비상을 꿈꾸던 충북의 날개죽지를 찢어놓는 셈이 됐다.

메르스 공포는 '생태적 삶-유기농이 시민을 만나다'란 주제로 오는 9월 18일부터 10월 11일까지 24일간 괴산군 괴산읍 동진천 일원에서 열리는 '2015괴산세계유기농산업엑스포'에도 막대한 타격을 입힐 것으로 우려된다. 엑스포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있다고 하지만, 메르스 확산을 조기에 막지 못한다면 세계적인 잔치는커녕 ‘동네잔치’로 끝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방역당국은 메르스가 한때 아시아에 창궐했던 사스(SARS) 만큼 위협적인 전염성이 없어 과도하게 걱정할 질병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2012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메르스가 발견된 이후 감염환자 1142명 중 465명이 사망, 치사율이 40%나 되는 치명적인 질병이다. 아직까지 예방백신이나 치료약조차 개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결코 안이하게 대처할 질병이 아니다.

조류독감도 가축과의 접촉을 통해서만 감염된다는 것이 기존 학설이었지만, 사람과의 접촉으로도 전염이 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 신종 전염병은 워낙 변종 등장 속도가 빠르고 예측 불가여서 좀 더 면밀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뒷북 방역으로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이 더는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세상 돌아가는 꼴이 참으로 갑갑하다. 그 진원지가 정부여서 더더욱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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