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글밭]정우택 국회 정무위원장

“내가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게임관련 법안을 찬성하게 될 줄은 몰랐다.”

반 새누리당 정서가 강한 한 게임전문 사이트에 올라간 ‘게임산업진흥법 일부개정안’에 관련된 글에 달린 댓글 중 하나다. 필자의 기억을 되짚어 봐도 지금까지 정치인생에 있어서 청년층으로부터 이런 적극적인 지지의사를 받아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얼마나 게임 이용자들이 국내 게임사들에게 강한 불신을 느끼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잠깐 자본주의의 초창기로 시계를 돌려 보자. 산업 혁명과 함께 성장한 초기 자본주의는 자유방임주의의 형태를 띠었다. 경제는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 ‘보이지 않는 손’이 조율할 것이니, 국가는 치안과 안전, 국방만 잘 하면 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인간의 탐욕을 간과한 이 논리는 금방 허점을 드러냈다. 경제 영역에서 심판 역할을 맡을 기구가 존재하지 않다 보니 자본가들의 비도덕성을 규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시장에서는 독과점·담합 등의 불공정 사례가 만연했고, 노동자들은 만 4세의 아동이 일터에 나서야 할 정도로 가혹한 환경에 내몰렸다. 시장의 실패였다.

결국 자본주의의 근본원칙인 생산수단의 사유제도와 사회적인 구조는 기존의 틀을 그대로 유지하되, 독과점에 대한 규제, 노동 3법, 공공재 등의 개념을 도입해 자본주의의 모순을 완화하는 혼합경제 체제가 시작됐다. 정부가 경제에 심판으로서 개입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가 경제에 개입하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혼합경제 체제를 택하고 있다.

확률형 아이템의 심각성이 이 정도까지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의 과도한 확률형 아이템은 문제가 있다. 일부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은 사행산업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확률형 아이템으로 쉽게 돈을 번 일부 게임사들은 게임 본연의 콘텐츠를 강화하기보다는 확률형 아이템만 재생산하고 있다. 게임의 콘텐츠가 정체돼 스스로 자신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시장 스스로의 실질적인 자정작용은 보이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시장 실패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혼합경제 체제의 탄생과 이번 게임진흥법 개정안을 관통하는 공통의 키워드는 기업윤리다. 기업이 가장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이윤이다. 따라서 기업의 이윤과 윤리가 상충된다고 판단할 경우 이윤을 우선시하게 되기 쉽다. 문제는 기업이 윤리를 저버리게 되면 사회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는 ‘규제개혁’을 ‘경제살리기의 화두’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것을 ‘기업의 이윤 추구에 방해가 되는 모든 규제를 철폐하라는 메시지’로 혼동해선 안 된다. 사회·경제적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규제는 철폐해야 하지만, 기업이 윤리를 지키도록 함으로써 국민의 안전과 권익을 보호하는 적확한 규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권투 선수가 자신이 시합에서 불리하니 발차기에 대한 규제를 풀어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기업이 윤리를 도외시하고 눈앞의 이윤만을 추구하는 것은 마치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과 같다. 국민들은 기업인을 자신을 착취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고, 이는 반기업정서로 이어져 기업들에 대한 규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되기 때문이다.

경제활성화를 위해서는 기업의 활성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기업의 활성화가 윤리를 도외시한 채 외형적인 성장의 형태로만 이뤄져서는 안 된다. 이는 사상누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들이 세계에서 가장 도덕적인 기업들로 평가받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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