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살아계실 적, 나무의 새순이 파릇이 올라올때 쯤 고향에 가면 밥상에 동그란 가죽장떡이 푸짐하게 올라왔었다. 연한 가죽을 잘게 다져 밀가루에 고추장을 풀고 고추를 송송 다져넣고 부친 가죽장떡.

무슨 맛이랄까? 말로 표현할수 없는 오묘한 맛이 혀를 자극했다. 입안에 퍼지는 고추장 맛하며 달큰 시큰한 가죽맛이 어울려 그야말로 자꾸만 손이 가는 음식이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줄기채로 삶아 그냥 밀가루 푼물에 적셔 커다랗게 부치는 밀가루가죽전.

입안에 넣고 즐기만 죽 잡아당기면 고소한 전맛이 매끄럽게 넘어갔다. 울안 가장자리에 가장 커다란 높은 나무 가죽나무 순은 거의 맨 꼭대기에서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가죽나무 순을 따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감을 따는 긴 대나무 장대 끝에 낫을 묶어 가죽나무 줄기를 베어내야 했다. 세상과 멀리 떨어져 있어서일까. 가죽나무 순은 파랗다기 보다 연보라를 머금은 빛이었다.

봄비가 촉촉히 내리고 나면 가끔은 이 가죽나무 순이 텃밭에서 쏙쏙 올라오는 경우도 있어 즐겁게 쉽게 가죽나물을 얻을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봄내 가죽나물은 밥상을 차지하고 사랑을 받았다. 어머님은 가죽을 꼭 ‘까죽’이라고 발음 하셨다. 까죽… 정겹다.

고추장과 된장을 적당히 넣고 들기름을 쳐서 무친 나물은 가히 일품이었다. 화단전체를 깔고 있는 돌나물을 뚝뚝 잘라다 넣고 가죽나물 무친 것.

씨를 뿌린 상추밭에서 오글오글 올아오는 어린상추를 솎아 넣고 날된장 한술 퍼넣고(우리 어머님은 비빔밥에 꼭 날된장을 넣으셨다. 특별한 맛이었다) 큰 양푼에 밥을 비비면 아들 며느리 돌러앉아 “맛있다 맛있다” 하면서 먹는 그모습. 그 모습에 어머님은 그냥 배가 부르셨다.

어린가죽이 조금 쇤다 싶으면 찹쌀풀을 쑤어 가죽줄기째 풀에 적셔 마당 빨래줄에 척 걸쳐 놓으셨다. 절반은 고추장과 검정깨를 섞은 풀에 적셔 걸치고, 또 그냥 아무것도 무치지 않고 삶은 채 투명하게 파란 실핏줄을 두른 가죽줄기도 걸쳐놓으면 마당 가득 가죽냄새로 넉넉했다.

빛깔좋은 햇살에 꾸덕꾸덕 마른 가죽줄기는 특별한 날 특별한 음식이 돼 상에 올라왔다. 팔팔 끓는 기름에 튀긴 가죽 부각…. 설탕을 뿌리기도 하고 소금을 뿌리기도 한 가죽 부각의 맛은 어떤 맛에도 비교하지 못하는 맛이고, 고추장에 말린 가죽맛은 밥반찬으로 특별했다. 그리고 고추장독안에 푹 담가놓았다 꺼내 참기름 한방울과 통깨만 솔솔 뿌려낸 가죽고추장 장아찌. 밥에 물말아서 얹어먹는 맛이란…. 그런데 우리 남편이 좋아한 가죽반찬은 줄기째 삶아 말려 바싹 마른 가죽잎을 훑어 기름에 볶아낸 것이었다. 김 부스러기를 볶아낸 것 같은 까만 가죽잎. 통깨를 솔솔 뿌려 놓으면 입안에서 바삭 부서지는 고소한 맛이란….

남편은 그 가죽가루를 넣고 밥을 비벼먹는걸 좋아했다. 어머님 돌아가시고 어떤 가죽 맛도 볼 수 없었다. 오늘 시골에 가서 남편은 가죽나무순을 따왔다. 아내에게 어머니님 손맛으로 만든 음식을 기대도 없었을테지만 어머니 그리움으로 가죽순을 따왔으리라.

얼른 삶아서 빨래줄에 널었다. 바삭 마르면 잎을 훑어 기름조금 소금조금 넣고 볶아주려 한다. 어머니 맛 그맛을 조금이라도 보여주고 싶다. 하지만 언제 어떤 음식이 되어 나올지는 나도 모른다. 그냥 바싹 마른 가죽잎을 고소한 들기름에 볶아 남편 밥상에 올려보겠다는 마음이다. 어머님~ 그 아련한 아름다운 맛을 기억해 낼 수 있도록….

錦沙 http://blog.daum.net/silkjewel-58

 
(이 글은 5월 17일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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