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세평] 홍준기 충북도중앙도서관장
회식 때는 동료들 배달 전문이다. 재치 있고 사려 깊고 필력도 있다. 특기는 메모를 잘하는 것이다. 시골 학교를 아기자기하게 운영하고 있는 주 선생이 얼마 전 자신이 엮은 책을 한 권 보내 왔다. 교직의 종점을 목전에 두고 그간의 메모들을 바탕으로 인생 산책길을 되돌아 본 책이다. 책 제목도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나이테 하나 긋다·문득, 가던 길 멈추고’.
이렇게 제목을 말하는 것은 책 광고를 위해서가 아니다. 책 내용 가운데 '교직의 서글픈 모습'을 보여주는 부분이 있어 소개하기 위함이다. 주 선생이 되살리고 싶지 않은 교직의 서글픈 모습, 그 내용은 이렇다.
10여 년 전, 주 선생은 생각지도 않았던 송사(訟事)에 끼어들게 되었다.
전임학교에서 함께 근무하던 한 교사가 학부모로부터 10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당하게 되었는데, 주 선생에게 법정 증언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당시 주 선생은 생활지도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거기서 좀 '특이한' 학생을 접하게 된다. 그 학생의 어머니는 남달리 학교를 자주 들락거렸고, 아들을 '아가'라고 부르는 역시 '특이한' 엄마였다.
주 선생의 표현대로 하면 그 '아가' 학생은 선생님과의 대화 중에도 분노 조절이 되지 않아 부르르 떨기도 하는 '예민한 성격'이었다. 학교에서는 그 학생과 관련된 크고 작은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기어코 학생들끼리의 폭력사건으로 그 학생은 '자퇴(自退)'를 하게 된다. 자신의 의사에 따라 자퇴를 하고도 그 학생은 교육청 홈페이지를 통해 자퇴를 강요당했다며 학교 측의 사과를 요구했다. 주 선생은 그 학생과 자퇴냐, 강요에 의한 퇴학이냐를 두고 인터넷 상에서 논란을 벌인다. 논란 끝에 그 학생은 결국 자신의 주장을 접고 본인의 의사에 의한 자퇴임을 분명히 했고 선생님들께 사과도 했다. 주 선생은 그때도 자신의 '특기대로' 그 학생이 올렸던 사과의 글을 프린트하여 보관해 두었던 것이다. 재판정에 선 주 선생은 당시의 출력물을 증거물로 제출함으로써 송사는 끝이 났다. 메모가 특기였던 주 선생이 출력해 보관했던 종이 한 장은 이래서 1000만 원짜리가 되었던 것이다. 재판 과정에서 주 선생의 심경은 매우 착잡했다. 스승과 제자가 변호사를 사이에 두고 갑론을박하는 상황이 너무도 괴로웠다. 어쨌거나 제자인데 그 아이를 위해 자신이 마지막으로 한 일은 "네 입 다물라!"였기에 주 선생의 괴로움은 더욱 컸다. 이 글의 끝에 주 선생은 이제 20대 중반일 그 학생에게 "진정 죄송한 마음이 가득하다"고 적고 있다. '미안한'도 아니고 '죄송한'이다. 가히 내가 아는 주 선생다운 표현이다. 하지만 30년 넘게 교실 주변에서 서성거린 필자로서는 결코 동의할 수 없는 표현이다. 교사로서 착잡한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그 학생에게 죄송할 것은 없다. 학교에 찾아와 콧수염 난 아들을 '아가'라고 부르는 '특이한' 엄마 밑에서, 아이는 결국 '특이하게' 큰다. 해마다 맞는 스승의 날, 선생님들은 나름대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보낼 것이다.
"교직선택은 참 잘 한 일이야! 정말 보람 있어!"
"차라리 관둘까? 참아야 하나?"
고민이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교사가 당당할 때 아이들은 '특이하지' 않게 바로 큰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