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장모님이 행차한다고 기별이 왔다. 딱 이맘때만 되면 우리집에 들른다. 연례행사로 길게는 이십여일, 짧게는 일주일가량 머무신다. 효(孝)의 달, 5월이기에 '대접' 받으려고 오시는 건 아니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산채의 제왕' 두릅 때문이다. 어느 핸가 5월에 두릅을 데쳐드린 적이 있는데, 이때가 되면 그 새순 향이 삼삼하다고 했다. 물론 쇠고기를 꿰어 두릅적을 부치거나 목말채 전병, 된장무침, 연어구이, 숙채, 초밥을 만들어드리지는 못한다. 그냥 데친 두릅에 초고추장만 있으면 끝이다. 개다리소반에 오른 두릅은 어쩌면 장모가 살아온 인생만큼이나 적적하다. 올해 나이 여든여섯, 온 길은 길고 갈 길은 짧다면 짧을 것이다. 그 쓸쓸한 잔여인생에서 두릅의 맛은 '딸'의 향기일지도 모른다.

▶장모는 일찍이 남편을 잃었고 몇 해 전 참척(慘慽·아들이 앞서 죽음)의 아픔까지 겪었다. 그 상처를 아는데도 (솔직히 말하면) 편하지는 않다. 장가를 가서 얻은 부모이거늘, 참으로 천박한 인성이다. 단지, 속옷차림으로 거실을 활보하지 못하고 안방에서 거실로 밀려나야하는 유목민의 생활이 불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반대로, 처가에 가면 장모는 고봉(高捧)으로 밥을 준다. 그 밥의 높이는 사랑의 높이다. 밥그릇을 비우자마자 듬뿍 또 담아주는 '처가밥'은 두릅 향을 잊지 못하는 장모의 ‘딸사랑’이다.

▶부인과 사별한 후 시골에 홀로 사는 노인이 있었다. 아들과 며느리는 '자기 집으로 들어오면 잘 모시겠다'며 날마다 통사정을 했다. 노인은 결국 지참금을 가지고 아들집으로 들어갔다. 한동안 무탈하게 지내던 어느 날, 노인은 며느리가 작성한 가계부를 우연히 봤다. 거기에는 '촌놈 용돈 2만원'이라고 쓰여 있었다. 시아버지에게 준 돈을 '촌놈 용돈'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며느리의 눈엔 시아버지가 그저 그런 무지렁이고 허릅숭이에 불과했던 것일까. 우린 '빚진 종'이다. 빚을 졌으나 그 빚을 갚지 않으니 채무불이행이다. 원숙하게 늙어가는 법을 모르고, 늙어감에 대한 원숙한 고민이 없기 때문이다. 그냥 늙음이냐, 낡음이냐만 있다. '늙는 것'과 '나이를 먹는 것'은 생판 다르다.

▶효(孝)는 늙을 노(老) 밑에 아들 자(子)를 받쳐 만든 글자다. 그러니까 아들이 노인을 업고 있는 모양새다. 자식을 길러본 다음에야 헤아릴 수 있는 것이 부모의 노고라고 한다. 공경심 없이 봉양만 하는 건 개나 말을 기르는 것에 불과하다.(犬馬之養)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것은 까마귀도 할 줄 안다.(烏烏私情) 비록 콩을 먹고 물을 마시며 가난하게 살지언정 마음으로 섬기는 숙수지공(菽水之供)이 해답이다. 물론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니 나 또한 비루먹을 삶이다. 누구나 늙는다. 누구나 죽는다. 그리고 헤어진다. 인생은 많이 흘러왔고 여생은 많이 남지 않았다. 장터 한 바퀴 돌면서 두릅 좀 사야겠다.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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