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당] 이상봉 대전시립미술관장

세계적인 미디어작가 백남준이 작고한지 9년이 지났지만 미술관의 소장품인 프랙탈 거북선을 볼 때 마다 한국인으로서 그가 세계적 거장으로 우뚝 선 것에 대해 미술인의 한 사람으로 자긍심이 든다.

백남준은 미디어 아티스트로 세계를 무대로 활동했으며 TV모니터의 사용을 통해 비디오 설치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설치 미술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작가다. 그는 1982년도에 휘트니 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열었고 1984년에는 뉴욕과 파리, 베를린, 서울을 연결하는 최초의 위성중계 작품인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발표해 매스미디어의 긍정적인 면을 드러내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천재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됐다.

백남준은 미디어 아트의 개척자로서 다양한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실험적이고 창의적으로 작업했던 예술가이다. 예술가의 역할을 폭넓게 보고 전 지구적 소통과 만남을 추구했던 백남준은 상상력을 현실화시키는 과학자이며 철학자인 동시에 엔지니어였다. 그가 만든 프랙탈 거북선은 1995년 대전 엑스포에 출품됐던 작품으로 재생조형관에 설치됐다가 2002년도 작품의 보존 및 관리차원에서 시립미술관으로 이전돼 상설 전시되고 있는 작품이다. 가로 3.5m, 높이 4m, 길이 6.7m로 작품의 크기만으로도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한다.

거북선의 구성은 총 400여대의 TV모니터와 수족관, 박제거북이, 재봉틀, 전화기, 측음기, 자동차문짝 등 100여개의 오브제로 구성됐다. 이러한 오브제들은 현대 산업사회의 산물들로 시대적 현상을 보여 주는 상징물이다. 세계 최초로 만들어진 거북선의 노를 날개처럼 만들어 미래로 날아가는 진취적인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거기에다 400여대의 TV에서 초당 대여섯번씩 바뀌는 동영상과 현란한 네온 빛은 작품의 위용을 드러내는데 한 몫하고 있다. 마치 이순신장군이 왜적을 물리치기 위해 거친바다를 가르며 출정하던 늠름하고 당당한 자태를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얼마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상업 화랑인 가고시안갤러리가 백남준의 후손과 전속작가 계약을 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작고한 작가를 전속작가로 계약하는 것이 흔한 일이 아니다. 그동안 저평가돼왔던 백남준의 작품이 미술사 적으로 좀 더 높게 평가받는 기회이자 세계미술계가 다시금 작가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리라고 본다.미술관의 공간이 협소해 프랙탈 거북선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시각적 공간이 확보되질 않아 작품을 볼 때마다 아쉽고 거장의 작품을 홀대하는 느낌이 든다. 특별전이라도 할라치면 기 확보된 공간마저 칸막이로 벽을 치게 되고 공간이 비좁아 머리 부분이 원형의 천정공간까지 차지해 답답함 마저 느끼곤 한다.

바라기는 대전에 백남준의 프랙탈 거북선을 제대로 설치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 작품을 이전하고 시립미술관의 미디어아트 공간으로 조성되길 소망한다. 프랙탈 거북선과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미디어 작품들로 전시관을 꾸며서 과학문화예술 도시 대전의 명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머지않아 백남준의 작품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나 국내외 관광객들이 거장의 작품을 보기위해 대전을 방문하는 숫자가 많아 질 것이고 대전의 문화적 위상을 세우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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