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문의 窓]충북본사 편집국장

정치를 거론할 때 가장 많이 쓰이는 일화 중 하나가 상앙의 '이목지신(移木之信)'이다.

중국 진나라의 재상으로 부임한 상앙이 나라의 기강이 서지 않는 이유를 알아보니, 백성들의 불신이 그 원인이었다. 그래서 궁궐 앞에 나무를 세우고 나무를 옮기는 사람에게 백금을 주겠다는 방문(榜文)을 붙였다. 그러나 나무를 옮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상금을 천금으로, 또 다시 만금으로 올렸다. 그러던 중 어떤 이가 장난삼아 나무를 옮겼다. 그랬더니 정말 방문에 적힌 대로 만금이 하사됐다. 그 후, 진나라는 백성들의 신뢰를 토대로 부국강병을 이뤄 마침내 중국을 통일했다. '무신불립(無信不立)', 즉 신뢰가 없으면 바로 설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인 일화다. 그만큼 바른 정치를 위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백성의 신뢰를 으뜸으로 꼽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신뢰는 변하지 않는 금언(金言)이다.

최근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갑작스런 자살과 그가 남긴 ‘리스트’로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자원외교 비리로 검찰수사를 받던 성 전 회장이 남긴 56자의 메모는 가히 충격적이다. 박근혜정부의 핵심 실세를 정면으로 겨냥한 것도 그렇지만, 전 정권의 부패를 파헤치려던 수사가 외려 현 정권을 궁지에 몰아넣는 셈이 됐기 때문이다.

올해 집권 3년차를 맞은 박근혜정부는 당초 청문회 과정에서 만신창이가 된 이완구 총리를 내세워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러나 이 총리에게 3000만원을 건넸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정국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있다. 2013년 4월 충남 부여·청양 재보선 때 이완구 당시 후보에게 3000만원을 줬다는 성 전 회장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명백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셈이다. 이 총리는 "돈 받은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내 놓겠다"는 극단적인 발언으로 결백을 주장했지만, '국정 2인자'로서 직무수행을 하는 것도 사실상 어렵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리스트에 오른 현 정부 전·현직 비서실장은 물론, 지난 대통령선거 대책본부 핵심인사들도 고인의 폭로에 답해야 할 때다. 이제 박 대통령이 밝힌 것처럼,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해 이 사건을 신속히 파헤치는 길 밖에 남아있지 않다. 좌고우면할 이유가 없다.

채근담(菜根譚)에 이르길 ‘밭에 난 잡초를 내버려두면 무성해져 곡식을 해치지만, 서둘러 뽑으면 오히려 곡식이 잘 자라고 거름으로도 쓰인다’고 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성 전 회장이 목숨을 걸고 말하려 했던 것이 무엇인지 국민들은 알고 싶어 한다. 고인 앞에 결백하고 국민 앞에 떳떳하다면, 당당하고 솔직해야 한다.

인디언의 속담에 "누군가를 평가하려면 먼저 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라"는 말도 있다. 남의 신발을 신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처지에서 본다는 말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경구에 얽매이면 안되는 이유다. 가혹한 정치로 말미암아 백성이 심한 고통을 겪는 도탄지고(塗炭之苦)를 더 이상 반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위기는 곧 기회다. 지금이 부패 청산의 출발점이다. 소의 뿔을 바로잡는 양 설치다가 소를 죽이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해서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소를 살린다는 명분만으로 비뚫어진 적폐를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정치는 신의다. 신의가 바탕 되지 않는 정치는 패도다. 신의를 잃은 정치인은 국민을 한 때 속일 수는 있어도 영원히 속이지는 못한다.

기원 전 399년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법정에서 독배를 마시고 비극적 생애를 마감하면서 "사는 것이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올바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남겼다. 이 시대 모든 주체들이 역지사지의 정신으로 돌아가길 권면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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