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프라민

▲ 신영권 서천 송림초 교사
오늘도 변함없이 커피 한 잔과 바다를 벗 삼아 명상에 잠길 즈음 "따르릉, 따르릉" 정적을 깨는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네, 유부도분교장 교사 신영권입니다."

"영권이?" 전화선을 타고 오는 반가운 목소리의 주인공을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20여 년 전 초등학교 은사님이셨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냇가에서 수영을 했는데 여학생들의 고자질로 인해 우리의 비밀은 탄로가 나고 말았다.

칠판에 우리들의 이름이 큼직하게 적혀 있는 것을 보고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선생님께서 오후에 무궁화나무를 꺾어 오라고 하셨다.

선생님께서는 한번의 실수와 우리의 소중한 생명은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며 우리를 무궁화나무 회초리로 때리셨다. 매우 따갑고 아팠다.

그러나 회초리를 맞으면서도 선생님을 원망하지 않고 존경할 수 있었던 것은 매맞은 자리를 항상 '안티프라민'으로 치료해 주셨기 때문이다.

당시 집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약으로 우리들 사이에서는 만능치료제로 통하고 있었다.

그것도 선생님께서 우리의 종아리를 어루만져 주셨으니 벌이라기보다는 사랑과 깨우침으로 다가왔다.

오후 늦게 은사님을 뵙게 되었다. 먼저 들꽃마을과 역사관으로 유명한 기산초등학교를 안내해 드렸다. 반가운 마음에 신성리 갈대밭, 춘장대해수욕장 등 여러 곳을 안내해 드리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으시다며 자꾸 발걸음을 재촉하셨다.

초등학교 친구들 얘기를 하며 걷다 선생님께서 갑자기 허리를 굽히셨다.

아스팔트 위에 떨어진 못을 주워 주머니 속에 넣으시는 것이었다. 차를 운전하다 보면 타이어에 못이 박혀 펑크가 나곤 한다며 그걸 걱정하시고 못을 주우시는 것이었다.

순간 20년 전 제자들에게 안티프라민을 발라 주시던 그 자상한 손길이 떠올랐다.

비록 세월이 흘러 주름 잡히고 거뭇거뭇해진 손일지라도 작은 것을 배려하는 그 모습은 그대로였다.

교직 생활 10년이 넘은 나에게 은사님의 손길은 아직도 잔잔한 가르침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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