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글밭]정우택 국회 정무위원장

새 봄이 다가오는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국회 잔디밭과 길가의 나무들, 뒤편 정원들도 온몸을 흔들어 봄의 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각종 회의와 행사들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필자의 눈에도 봄이 성큼 다가온 것이 보이는 데, 다른 이들의 봄은 어디까지 왔고, 어느정도 느껴질지 궁금하다. 그들의 가슴에도 작은 잎들이 싹트기 시작하는 순간들은 분명 있을 것이다.

봄이라는 단어는 여러 가지 생각을 갖게 해주지만 필자에게 봄은 여유와 평온함과는 거리가 멀다. 3년 전 봄은 19대 총선을 준비하고 맞이하며 결과를 받아들이는 그 순간이었다. 결론적으로 참으로 보람 있는 봄이었다. 허나 매번 선거가 봄에 치러지니 그야말로 치열한 봄이 아니겠는가? 지금은 그 순간의 치열했던 기억보다는 행복하게 싹을 틔우는 봄이 더 크게 느껴지고 있다.

행복이란 어떤 것일까? 자신보다 더 크고 좋은 집, 더 좋은 차, 훨씬 많은 수입이 있는 사람들이 있는 데 그들과 견주지 않는 행복함을 말한다. 인간의 욕심이 끝이 없다고 하지만 행복은 욕심과 비교대상이 아닌듯하다.

직원들에게 행복의 기준이 무엇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대부분 가정과 자녀, 연애, 월세에서 전세의 레벨업(?) 등을 이야기 하는 데 한 직원이 뜬금없이 자신의 과거 여행사를 이야기 한다. 무슨 소리인지 귀 기울여 듣고 나니 참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를 풀어보겠다.

2007년 겨울, 런던생활에 지친 그는 무작정 버스에 몸을 던져 파리로 향했다. 언젠가 몽마르트 언덕에서 만난 인도화가는 그 곳에서 그림을 그리며 행인들과 잡담을 나누며 그들의 마음의 짐을 덜어주는 카운슬링을 해주는 것이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더 좋았다고 한다. 답답한 마음에 그 친구를 보기위해 파리로 갔던 것이다. 그렇게 몽마르트의 매력에 빠져 지내던 어느 날, 이 아름다운 기억을 남겨놔야 한다는 의지로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오늘도 몽마르트 언덕으로 향했다. 계단을 오르던 중 한 소년이 새에게 모이를 던져주는 것을 보고 너무나도 귀여워 반사적으로 셔터를 누르게 됐다. 그것을 눈치 챈 소년에게 다가가 너무나도 귀여워 사진을 찍게 됐다고 말하고 보니 그 소년에게는 한쪽 팔만 있을 뿐 다른 팔은 헐렁한 옷가지만 나부끼고 있었다고 한다.

직원은 ‘아차! 실수했구나! 하는 마음에 아이와 아버지에게 알고 찍은 게 아니라 순간 너무 좋은 모습이라 모르고 찍었다고 거듭 사과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아이의 아버지는 미소를 지으며 자기보다는 아들의 생각을 물어보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건냈고 영국에서 온 그 소년은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한다.

“난 괜찮아. 단지 한 쪽 팔로만 과자를 주니 더 많이 주지 못하는 게 새들에게 미안해”란 대답을 하며 활짝 웃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한다.

그 아이의 순수한 대답에 듣고 있던 필자까지도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왜 그 아이의 마음을 무시하고 그 아이의 행복을 내 마음대로 판단하였는가. 직원은 그 이야기를 끝내며 행복의 기준은 모든 사람에게 다르겠지만 적어도 자신에게는 물질적 가치보다는 본인의 만족이 기준이 된다고 한다. 스스로의 환경에 행복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타인과 비교되는 행복이 아닌 나만의 가치에 기준을 둔 그 행복을 찾는 것이 진정한 행복을 찾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단 한번뿐인 인생, 뚜렷한 목표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도 좋지만 훗날 뒤돌아 회상하면 ‘나 참 행복하게 살았구나!’란 생각이 들면 얼마나 좋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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