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세평] 홍준기 충북도중앙도서관장

2005년 3월 김천호 당시 충북도교육감이 제천의 한 고등학교에 들렀다. 김 교육감은 그 학교에 입학했던 36세의 '조폭 출신 입학생'에게 자신이 쓴 '초심(初心)'이라는 휘호를 주며 격려했다. '학교로 돌아간 조폭' 신입생은 "훌륭한 가르침을 가슴깊이 새기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어느덧 10년 전의 이야기가 새삼스러운 것은, 영원한 교육자로 칭송되는 김천호 교육감 때문도 아니고 '조폭출신 신입생' 때문도 아니다. 김 교육감이 직접 써서 건네 준 '초심'이란 말 때문이다. 누구나, 무슨 일을 하거나 초심은 있다. 정치할 사람은 반드시 '무엇'이 되겠다는 다짐을 할 것이고, 사업할 사람은 반드시 돈을 많이 벌어 성공하겠다고 다짐할 것이다.

그러나 훌륭한 정치가(家)가 되겠다던 사람이, 정치인(人)도 못되고 '정치꾼'에 머물고 만 사례가 많다. 성공한 기업가(家)가 되겠다던 사람이, 기업인(人)은커녕 '장사꾼'에 머물고 만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해마다 2월이면 많은 교사들이 교단을 떠나고, 3월이면 많은 교사들이 새로 교단에 선다. 이 새내기 교사들의 각오와 다짐은 아주 특별하다. 그것은 교직이 그냥 '직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원 자격을 받기 전부터 교육자로서 사명과 책임에 대해 공부했다. 어려운 고시를 거쳐 임명장을 받을 때는 선서도 했고 나름대로 다짐도 했다. 그 다짐은 배운 대로 훌륭한 스승이 되겠다는 교사로서의 초심이다. 어느 누구도 가로막아서는 안 되고 포기해서도 안 되는 숭고한 마음가짐이다.

그러나 훌륭한 스승의 길을 걷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제일 큰 문제는 교직사회 내부에 있다. '어떤' 선배는 이렇게 가르친다. "앞서지(率先) 마라! 너 혼자 학교 지키는 게 아니다. 애들 건드리지 마라! 걔들도 자유가 있다. 일한 만큼 월급 받으면 된다. '스승의 길' 어쩌고 하는 말은 우리를 꼬드기기 위한 고상한 유혹일 뿐이다."

'어떤' 선배의 이런 '훈수'가 과연 가상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치부해 버려도 될지 걱정이다. 요즈음 아이들도 넘기 어려운 고개다. 이미 가정에서부터 온실 화초로 자란 탓에 참을성이나 배려심이 부족하다. 가정에서부터 기본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에게서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나 어른에 대한 공경심을 기대하는 건 애초부터 무리이다. 직장에서 '젊은 사람'에게 "인사 좀 하라"고 타일렀던 Y 과장은 "내 부모에게도 인사 안 한다"며 대드는 젊은이에게 손들고 말았다. '민주화된' 사회에서의 '유식한' 학부모는 순진한 교사들이 더 넘기 어려운 고개다.

선생님께 큰 소리치고 야단도 친다. 무릎 꿇리지 않으면 다행이다. 일선학교를 지원하고 지도 조언하는 기관을 감독청, 상급기관이라 부르는 '갑' 근성과 사대(事大)관행은 아직도 남아 있다. 고인이 되신 김 교장선생님이 "교장에게 학교를 맡기면 교장은 밥을 만들지 결코 죽을 만들지 않는다”며 학교장의 자율성을 주장했던 취중(醉中) 철학이 30년 전의 이야기이다. 일부 언론에 의해 종종 일어나는 교육에 대한 몰이해(沒理解)도 교사들이 넘기 힘든 만만치 않은 고개다.

이렇듯 교직자의 초심을 흐트러뜨리는 고개가 적지 않다. 그런 고개들을 꿋꿋하게 넘어 언제까지나 교직의 초심을 지켜나가는 모습이, 참교사의 모습이라는 데 무슨 이의가 있겠는가?

올해는 30년 만에 교직에 돌아왔다는 56세 신규교사의 각오가 유난히 눈에 띈다. 이 56세 교사나 36세 고교입학생과 같은 초심을, 3월의 모든 새내기 선생님들께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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