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글밭]김인식 대전시의회 의장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말이 있다. 살면서 한번쯤은 경험해 보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 울분을 70년 넘게 품고 살아가는 분들이 계시다. 그것도 나와 멀지 않은 곳에….

광복 70주년을 맞아 지난 3월 1일 보라매공원에서는 매우 뜻 깊은 행사가 열렸다. ‘대전 평화의 소녀상 건립·제막식’이다.

시민 3000명의 뜻에 대전시가 지원한 합작품이다. 당일 할머니 대표로 참석하신 김복동, 길원옥 두분 손을 잡았을 때 필자에겐 그들의 깊은 상처가 고스란히 전달돼, 아직 사과와 반성 없이 뻔뻔함으로 일관하고 있는 일본정부에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녀상을 마주하며, 일본정부의 공식사과와 반성만이 이 많은 분들의 한과 꼬인 역사의 실타래를 푸는 열쇠라는 생각을 다시금 확신했다. 지면을 빌려 아베정권에 촉구한다.

1993년의 고노담화(일본군위안부의 존재를 인정하며 군의 관여에 의해 위안부가 모집됐고, 이들이 강제상태 하에서 참혹한 생활을 이어간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를 계승해 진정한 사과와 반성의 자세로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역사의 심판 앞에 설 것을.

‘들리나요?’란 책이 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 구술기록집이다. 부제가 '열두 소녀의 이야기'다.

책을 열어 첫 번째 구술자 강도아 할머니의 이야기를 접했을 때, 필자는 너무 가슴이 아파 자꾸 흐려지는 활자를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여성으로서 견뎌내기 힘든 수년에 걸친 고통, 그들은 송장이나 마찬가지로 생지옥을 살아냈다. 그 기막힌 이야기를 옮겨 적어본다.

"한국 여자들이 가가지고 일일이 그놈들한테 설움 받고 들어가라면 들어가고 나가라면 나가고, 안하면 죽으니까 목숨 살라고 누우라면 눕고 앉으라면 앉고, 뭐 하라는 대로 하니까. 그라지 않으면 바로 목숨 뺏고 죽이니까. 우리는 나라가 없으니까 누구한테 말할 데도 없는 것이고, 말도 못해보고 죽으라면 죽고 살라면 살고, 엎드리라면 엎드리고 서라면 서고, 그렇게 안하면 살아날 수가 없었어요. 일정 때는."

16살에 경남에서 만주로 끌려간 할머니 이야기다. 18살에 대만으로 끌려가 5년간 위안부 생활을 한 할머니는 "다시 태어나면 여자로 태어나고 싶으세요?"란 질문에 이렇게 답하셨다. "새로 태어나가지고 공부도 하고, 얘기도 낳고 글을 배우는 기라. 다시 태어나면 공부부터 하고 시집가서 애 낳는 기라. 여자로 태어나는 기라. 원한이 돼서 죽어서 다시 여자로 태어나 원 한번 풀어달라고."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한 요시미 요시아키의 자료에 따르면 위안부 총수는 최소 8만에서 20만명으로 추산되며, 그 중 조선여성이 절반을 넘는다고 한다. 하지만 등록된 피해자는 238분(대전 5분), 그나마도 생존해계신 분들이 53분으로 대전 분들은 모두 돌아가셨다.

전쟁터에서 숨진 분, 치욕에 자살한 분, 해방 후 타국에 버려져 돌아오지 못한 분들과 평생 가슴에만 묻고 살아가신 분들도 많으실 것이다. 서릿발 같은 한에 가슴이 저민다.

16살에 중국으로 끌려가 6년간 위안부생활을 한 할머니는 피해 내용을 털어놓은 후에는 속이 좀 풀어져서 나쁜 꿈을 덜 꾸게 됐다며, 일본에게 압박받은 역사를 요즘 크는 아이들이 잘 몰라서 안타깝다고 하셨다.

또 내 이야기를 책으로 남겨 많은 사람들이 일본의 잘못에 대해 알게 됐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며 자신의 구술 자료를 책으로 내는 것에 흔쾌히 동의하셨다고 한다. 보라매공원 소녀상은 늘 그 자리에서 자신들의 피맺힌 한, 나라 없는 설움, 잊지 말아야 할 아픈 역사 등을 우리에게 이야기해줄 것이다.

3월 들어 제법 봄기운이 완연하다. 이번 주말 자녀의 손을 잡고 보라매공원 소녀상을 찾아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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