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조일현 사진작가

청주 낭성에 살 때의 일이다. 세상과 단절하고 오로지 공부에만 전념하던 때였다. 집은 신작로를 휘어들며 좁은 고샅을 지나 석간수가 돌돌돌 떨어져 흐르는 조붓한 골을 끼고 남향으로 지어져 있었다. 골의 둔치와 면한 포도밭은 산과 대지로 둘러싸인 작은 분지였다.

신기하게도 내 집 마당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보이는 작은 포도밭이었다. 둔덕을 따라 걷다 보면 얼마 오르지 않아 듬성듬성 너럭바위가 있는 산등성이를 만날 수 있었다. 그곳에서 혼자 놀다 해가 설핏해서야 내려오곤 했으니 팔자로 보건대 강태공이 부러웠을까 싶다. 나의 게으름 탓도 있었지만 마당에 돋는 들풀이며 들꽃 하나라도 다치게 하고 싶지가 않았다. 봄이 오면 피어나기 시작하는 이름 모를 꽃들부터 채송화가 마당 한가득 무리지어 피어나고 또 스러지기를 반복하다가 종내 망초 꽃에 자리를 내주곤 하던 마당이었다. 이쯤 되면 내게 인심을 나눠주던 이웃 주민들도 대개 외면하게 된다. 더러는 풀을 베고 마당을 정리하는 요령을 가르쳐주시는데, 풀은 베고 나면 곧 돋아나니 아예 제초제를 뿌리란다. 남들 마당이 시원스레 깨끗한 것은 다 농약 덕이지 그들이 바지런해서가 아니란다.

으닝징이. 은행리의 옛 지명이다. 산협촌도 근대화의 물결을 벗어나기 어려웠는지 성황당은 자취를 감추고 오르는 고갯길에 터만 남기고 있었지만 동리 앞을 흐르는 내는 얼마나 빼어난지 물속을 비집고 솟아난 기암괴석이며 그곳을 맴도는 물결 따라 날갯짓하며 유영하는 원앙은 차라리 한 폭의 동양화 속을 거니는 듯 착각을 자아내게 했다. 아마도 무릇이 촉을 내미는 이른 봄이었을 게다. 그 제방을 유유자적 거닐며 산책을 하는데 8t 트럭이 흙먼지를 뽀얗게 날리며 거침없이 둑방길을 내달리고 있었다. 인근에 터를 닦고 있는 모양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걷고 있는데 몇 보 앞에 시선을 잡는 게 있었다. 갈지 자 모양의 그것은 바퀴에 납작하게 짜부라든 물뱀이었다. 아침의 따뜻한 햇살에 동면에서 깨어나 둑을 넘어 물가로 가고 있었을 터. 짜부라든 물뱀의 부모인지, 부부인지, 형제인지 모를 뱀 한 마리가 그 참혹한 지경에 사람의 인기척도 아랑곳없이 고개를 뒤로 돌리고 하염없이 굳어 있었다. 하물며 미물조차도 그랬다.

우도에선 산 밑의 뻘과 면한 조붓한 집에 살았다. 그곳은 ‘화엄의 바다’를 작업하기 위해 삼 년을 머문 곳이다. 간척사업으로 조수가 없어지자 바닷물이 닿는 지역에 염생식물이 자라고 뭍으론 갈대가 우거져 있었다. 마당 가장자리까지 올라온 갈대는 어른 키를 웃돌아 외부에서는 집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곳이었다. 한 번은 느지거니 아침을 먹고 마당 한켠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데, 갈대숲을 헤집고 나타난 놈이 있었다. 노루였다. 맑은 눈망울과 쫑긋한 귓바퀴의 아기노루! 시선이 맞닥뜨리자 놈은 그 자리에서 사지가 굳고 말았다. 지척간이었다. 손을 뻗어 몽둥이를 들면 닿을 거리였다. 짐짓 시선을 거둬 딴전을 부리다 그곳을 보니 놈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또 한 번은 카메라를 챙겨들고 갈대숲을 헤치고 나가 만에 이르렀을 때였다. 붉은 염생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널브러진 흰 조개껍질이 대조를 이뤄 묘한 풍경을 자아내는 곳이었다. 붉은 것 속에 시선을 잡는 것이 있었다. 머리를 반짝 든 뭉툭한 뱀, 능구렁이였다. 이놈도 사람의 인기척에 미동조차 없었다. 문명의 이기에 따라 황폐해지는 건 비단 자연만은 아닌 듯싶다. 요즘 우리는 너무 요란하지 않은가? 인간은 문명을 버리고 살 수는 없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자연을 떠나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자연과 어우러지는 삶, 사람이 진정으로 그리운 시절이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