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가족 모이면 즉석 오케스트라 연주

아버지의 지휘에 맞춰 어머니가 피아노를 연주하면 아들들은 비올라·첼로·바이올린을 협연한다. 가족들이 모이면 집안엔 음악이 흐르고 한곡 한곡마다 사랑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유성구 도룡동 성당 뒤편의 그림처럼 예쁜 빨간 이층 벽돌집에 사는 정두영(鄭斗榮·65)씨네는 가족 대부분이 악기를 다루거나 음악을 한다. 그래서 정씨네는 '음악 가족'이란 말이 딱 어울릴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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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네 가족은 정씨를 비롯, 부인 한정강(韓正江·64), 장남 정주나(38), 차남 정사나(37), 삼남 정나라 (24), 막내 정하나(23)씨까지 모두 여섯 명이다.

플루티스트이자 대전시향의 초대 지휘자이기도 한 아버지 정씨는 성서 고린도전서 13장에 곡을 붙인 복음성가 '사랑'의 작곡자로도 유명하다.

이화여대 음대, 미국 맨해턴음대 대학원을 졸업한 부인 한씨도 KBS교향악단, 서울시향과 협연하는 등 피아니스트로 활발한 연주활동을 펼쳤다. 지난 8월 남편이 정년퇴임한 침례신학대학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집사람은 나의 첫사랑이에요. 멀리서 몇 번 보았지만 참으로 예뻤고 한 번 사귀어 보고 싶었지만 접근하기가 어려운 상대였죠. 운명이 우리 둘을 묶어 놓으려고 그랬는지 우연히 다시 만날 수 있었고 지금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좋은 평생의 반려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3 때 기독교방송국에서 합창단 활동을 통해 만난 이 부부는 한씨가 대학원을 졸업하던 지난 64년 결혼한 후 미국 유학을 시작하며 꿈 같은 신혼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음악을 하는 멋쟁이 남편은 늘 많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결국 결혼 10여년 만에 이혼을 결심한다.

"이혼을 결심하고 절망에 빠진 1976년 10월 3일 아내 손에 이끌려 어네스트엔젤리 부흥회에 가게 됐어요. 부흥회에 다녀온 다음날 15분 만에 '사랑'이란 곡을 완성했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제가 썼지만 예수님의 힘으로 쓰여진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씨는 운명처럼 예수님을 만나게 됐고 그 후 생활은 180도 달라졌다. 정씨는 UC데이비스 교수직를 그만두고 신학교에 들어가 개척교회 목사로 변신한다. 두 사람은 하나의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시작, 또다시 평생 반려자로 살기로 약속했다. 연년생 두 아들을 낳은 이후 13년 만에 셋째와 넷째 아들을 얻은 것도 이 시기다.

장남 주나는 미국 줄리어드 음대에서 비올라를 전공해 미국에서 음악가로서의 길을 가고 있으며, 가족 중 유일하게 음악 외의 길을 택한 차남 사나 또한 첼로를 공부했다. 하지만 늘 남다른 개성을 강조하던 그는 '가족 중 누군가는 음악하는 사람을 뒷바라지 할 직업을 가져야 하지 않겠느냐'며 현재 LA에 있는 투자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삼남 나라는 독일 바이마르 국립음대에서 피아노·작곡·지휘 등을 공부 중이고, 막내 하나도 2001년 독일에 건너가 뮌헨 국립음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 중이다.??

6세 때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한 하나는 특히 지난 4월 대전 문화예술의 전당이 기획한 '2004 스프링 페스티벌' 개막 공연인 러시아 국립 카펠라오케스트라 초청 연주회에서 콩쿠르를 통해 개막 공연 솔리스트로 뽑혀 뛰어난 재능을 펼쳐 보이기도 했다.

"재능은 타고 나는 것이라는 생각에 아이들에게 억지로 음악을 시키지는 않았어요. 부모가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함께 음악을 듣고 하다 보니 아이들이 자라면서 음악을 전공하거나 좋아하고 그러니 자연스럽게 '음악 가족'이 된 거죠."

유학을 가 뿔뿔이 흩어져 있는 아이들이 겨울이나 여름방학을 이용해 돌아오면 정씨 집에선 수시로 즉석 음악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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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 손에선 항상 악기가 떨어지지 않았고, 모두들 음악에 대한 사랑이 대단했다.

한 명이 음악을 연주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이 이내 가세해 합주가 이뤄졌다. 가끔 아들들이 속옷바람으로 바이올린을 켜는 '세미누드연주'도 벌어지곤 했다.

"가족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여 즐겁게 연주하는 게 제 꿈입니다." 한씨의 작은 소원이다.

폐기종에 폐염까지 겹쳐 병세가 악화된 정씨는 현재 집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간신히 숨을 이어 가고 있는 상태다. 지난 84년 대전시립교향악단 지휘자로 부임한 이후 음악계에 깊은 발자취를 남긴 큰 별은 오랜 병상생활 탓인지 야윈 모습이었다. 그러나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대가의 위엄이 금세 감지됐다.

건강이 좋지 않은데도 눈빛은 여전히 빛나고 풍부했으며, 결코 절망이란 어두운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다.

최근엔 병마와 싸우면서도 예술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고 성서의 내용을 한점 한점 그림으로 표현해 내기까지 하는 등 창작의 결실들을 드러내고 있다.

이 부부는 수술과 투병을 통해 가장 힘들 때 하나님께서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신다는 것을 체험했다. 정씨는 생의 고비마다 '하나님의 찬송을 부르는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하고 빌었던 것을 기억해 냈다.

정씨는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게 해 저희를 찬송자가 되게 하신 하나님의 레슨시간이었습니다. 또 병도 하나님의 계획 속에 걸린 것이니 앞으로 하나님이 더 기막힌 좋은 길로 안내해 주실 거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이 부부는 질병이 고난이 아니라 '하나님의 레슨'이었다고 말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매달려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이었다.

"아내를 신뢰합니다. 내게 예수님을 소개해 준 신앙의 인도자인 그녀가 하는 모든 일은 틀림없다고 믿습니다."

"저 역시 남편을 신뢰합니다. 제가 열심히 살 수 있는 것은 그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부부가 서로를 신뢰하는 모습은 역경의 세월 속에 키워온 사랑의 두께를 말해 주는 것 같았다.

2시간 남짓의 인터뷰였지만 이들 부부의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온 가족이 모두 모인 정씨네 거실 풍경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가족이 함께하는 모습은 어떤 것도 아름답지만 그중 제일은 같이 사랑을 노래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정씨네 가족이 모두 모이면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들의 '가족 공연'을 가능케 한 것은 음악적 재능이 아니라 바로 사랑을 전하려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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