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포럼] 이영조 배재대 교양교육부 교수

어느 시인은 '하늘을 나는 노고지리'의 비상에서 '피의 냄새'를 맡았고, 또 한 시인은 '연약한 봄이 이 땅에 변함없이 세우고 있는 것은 오직 하나 무너지지 않는 감옥뿐이었다'고 이 봄을 슬퍼했다.

해마다 4월이 오면 우리는 정의로운 민주주의를 향해 거리로 나섰던 젊은이들을 기억하며 새삼 4·19혁명의 의미를 되새기곤 한다. 그러나 4·19보다 한 달 이상이나 앞서서 우리 지역에서도 고등학생들이 민주사회 실현을 위해 분연히 일어섰던 학생의거가 있었으니, 이른바 3·8민주의거다. 그러나 3·8민주의거가 2013년 4월에 국회 법률안을 통과해 민주화운동으로 정식 인정받았음에도 이 의거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점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심지어 대전 시민이라면 한 번쯤 지나쳤을 둔지미 공원에 3·8민주의거 기념탑이 서 있음을 알고 있는 사람도 드문 실정이다.

55년 전 자유당 말기의 부정부패가 극에 달했을 시기, 독재와 강권은 신성한 학원에까지 침투하여 학원을 정치 도구화하는가 하면, 학생들의 교육권마저 박탈하기에 이르렀다. 학기말을 앞둔 어느 날,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학생들은 맨손으로 학교 담장을 뛰어 넘어 부정에 항거했다. 수업 중에 그대로 거리로 뛰어나온 학생들에게 무기가 있을 리도 없으련만, 경찰은 경찰지프차뿐만 아니라 기마순경, 소방차까지 출동하여 곤봉과 소총 대머리판을 휘두르며 무력 진압하기 시작했다.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으로 머리를 찢긴 학생, 경찰 지하실에 끌려가 사정없이 두들겨 맞았다는 학생회 간부의 가슴 아픈 일부터, 허겁지겁 달아나다 인분통에 빠진 학생 등 차마 웃지 못 할 일들이 우리 지역 대전에서 있었다.

필자는 3·8민주의거 당시 결의문을 직접 작성했다는 분을 뵌 적이 있다. "3·8민주의거는 2·28대구민주화운동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 규모의 학생운동이에요. 충청권 최초의 민주화 운동이지요. 4·19혁명의 기폭제가 된 것은 물론 우리 젊은 학생들의 정의감과 순수한 용기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이날까지 자부심을 느끼며 삽니다."

이제는 청력마저 희미해져 보청기에 의존하며 어렵게 대화를 해야 했지만, 당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보여 주던 어르신의 강단 있는 음성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시대가 변하고, 삶의 방식이 달라진 요즘의 젊은 세대들에게 과거 같은 또래가 보였던 행동을 그대로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자유와 평화의 뒤에는 불의에 항거할 줄 알았던 정의로움이 있었고,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선배들이 있었음을 기억해 주면 좋겠다.

3·8민주의거를 기념하는 '3·8학생백일장'이 올해로 5회째를 맞고 있다. 아직은 학생들의 참여가 활발하지는 않지만, 이 기회를 통해서라도 우리 젊은 학생들이 3·8의 의미를 알고, 짧은 글 한 편으로라도 선배들의 용기에 감사의 박수를 보내 드리면 어떨까. 아울러 우리 대전 시민들이 둔산동의 둔지미 공원에 있는 3·8민주의거 기념탑 앞을 지나면서 한 번이라도 좋으니 그 날의 함성을 마음속으로나마 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3·8민주의거는 '정의의 깃발로 올린 역사의 불꽃'이라는 참의미를 인식하여 우리 대전의 자랑스러운 역사로 자리매김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맑고 청청한 노고지리 소리가 기대되는 봄, 3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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