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의 끈'으로 만나 '가족의 情' 나눠요"

노경성(盧京星·35)씨가 조용히 문을 열었다.

어제 분수를 통분하지 못해 불안해하던 한 학생이 자습실에서 혼자 수학문제를 풀고 있다.

방법은 알려줬으니 답을 찾는 것은 아이의 몫이다.

수학은 세상사와 달리 정답이 하나뿐이기에, 아무리 복잡해도 끝이 분명한 법이다.

학교에서 수학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중학생들을 위해 2년째 수학 클리닉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노씨에게 해답이 보이지 않는 문제가 있다.

바로 외국인 노동자들의 삶.

그가 그들의 삶 속으로 뛰어든 것은 1999년 친구의 군입대로 교회의 총무일을 대신 맡아 보면서부터다.

대화동 빈들교회의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모임에서 노씨가 만난 친구들은 마치 학교 수학경시부에서 소외된 아이들처럼, 한국 사회에서 소외되고 산업현장에서 상처받는 이들이었다.

다릭, 알리, 로산, 지비, 디아…. 파키스탄과 네팔에서 온 낯선 이름의 이 친구들과 친해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비, 오늘이 내 친구 아들 돌잔치인데 같이 가 볼까요?"

일주일 내내 시끄러운 공장에서 업무에 시달린 그들은 오늘 같은 일요일 그냥 쉬고 싶었을까, 대답이 없다.

"걱정하지 마. 그냥 몸만 가서 한국문화가 어떤지 보면돼, 재밌을 거야"

물론 지난주 노씨가 했던 이 모든 말은 어설픈(?) 영어로 포장돼 전달됐고 몸짓까지 동원한 노씨의 의사는 그런대로 잘 전달된 듯했다.

"형님, 우리 나라에서는 선물을 준비해야만 해요. 선물…."

지비(30·네팔)는 어설픈 한국말과 또렷한 영어를 섞어가며 부담스럽다는 표정이다.

이들은 이슬람 계열이어서 술을 금기시할 뿐 아니라 선물을 준비하지 않고 남의 잔치에 가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노씨는 부담스런 눈빛의 이들을 자기 승합차에 태워 동부터미널 근처 돌잔치가 열리고 있는 뷔페식당으로 데려갔다.

노씨의 친구는 이들을 한껏 반기며 자리를 권했고, 오늘의 주인공인 아들을 보이며 자랑을 했다.

나이는 서른밖에 안된 지비와 그의 동료들이었지만 고국에는 서너 명의 아이들이 있는 아버지들이었다.

낯설고 투박해 보이는 외국인에게 아기를 안기는 것을 아기 엄마는 석연찮아 했다. 그러나 지비는 자기의 아들과 꼭 닮은 눈을 한 아기를 안고 싶었다.

보이지 않는 어색함이 분위기를 잠깐 냉각시켰다.

서러워서일까, 고국의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의 복받침이었을까 지비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노씨는 보았다.

때마침 아기가 터뜨린 울음소리로 일단락된 그 짧은 순간이 노씨에게는 중요한 가르침의 순간이기도 했다.

그들에게 무조건 다가가 허물없이 대하는 것이, '배푼다'는 인상의 모든 활동이 진정 그들을 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더욱이 불법체류 외국인을 일거에 출국시키려는 정부의 방침이 그들의 입지를 조여오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런 기술없이 그들에게 배풀고 무조건 주는 식의 봉사는 한계가 있다.

어쩌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한국문화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한국어를 공부해 소정의 시험을 통과, 좀 더 합법적으로 한국에 머물 수 있도록 돕는 것일지도 모른다.

노씨는 이번달부터 한남대에 개설된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 수강을 시작했다.

수학 클리닉이 오후 1시에 끝나면 바로 2시부터 저녁 6시까지 강행군을 한다. 수강료가 한달에 50만원이어서 노씨에게 경제적으로 부담은 되지만 수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으고 있다.

일단 베푼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금욕의 시기인 라마단, 주류에 대한 종교적 인식 등 그들 특유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어떤 커뮤니케이션도 그 효과가 반감한다는 것이 기본이다.

지난 주말에는 개인사정으로 빈들교회를 가지 못했다. 그래서 지난 수요일 일을 끝내고 돌아와 식사를 하고 있는 그들을 찾았다.

밥을 우유에 말아 머는 방글라데시 음식을 내놓으며 지비가 통장을 건넸다.

"월급이 들어왔다는데 통장확인 좀 해 주세요."

비밀번호까지 스스럼없이 알려 주는 지비의 표정에는 노씨에 대한 믿음이 묻어났다.

그가 지난 4년간 교회를 쫓아다니며 한 일은 체불임금을 독촉하기 위해 사업장을 쫓아다니고, 크리스마스 때 외로워할 외국인 노동자를 위해 작은 파티를 주선하거나 독립기념관에서 한국의 역사를 알려 주는 '베풀고 있다'는 생각의 연장선상에 있는 활동들이었고 제법 보람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보람보다 지금 이 외국인 친구들이 자기에게 신뢰를 갖고 다가오는 이 순간 노씨를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했다.

그리고 살짝 실패한 한국의 돌잔치 체험을 다시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20일 남짓되지만 전국에서 최초로 개설된 한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도 배운 노씨다.

"지비, 로산, 알리. 내 아들 돌이 다음달에 있는데 와 줄거지?"

"그럼요. 꼭 가야죠."

시원하게 대답하는 친구들의 말끝에 노씨가 덧붙인다.

"우리 애기 좋아할 멋진 선물도 잊지 말고, 알았지."

꼭 선물을 원해서가 아니다. 그렇게 말해야 그들의 부담이 오히려 줄어든다는 것을 이제는 이해했기 때문이다.

"신앙을 갖고 살며 항상 남을 생각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그 생각이 구체화되면서 우리가 남을 통해 무엇을 베푼다는 생각은 위험한 것이라는 것을 배웠다. 인간적 대접을 받지 못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이나 그들 모두의 내면적 자존심을 이해하는 게 선행돼야 진정한 도움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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